
한국헬스경제신문 | 홍유미 차의과대학교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여성 청결제는 치료제가 아니다
“여성 청결제 써야 하나요?”
“여성 청결제 써도 되죠?”
산부인과의사로서 받는 단골 질문들이다. 의학의 영역 끝에 살짝 걸쳐 있는 꽤나 애매한 질문인데,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질문에 이미 효용성이나 부작용에 대한 의문이 어느 정도 내포되어 있다.
나는 이런 질문을 ‘의사’에게 하는 분들에게는 “쓸 필요 없다.”고 한마디로 일축한다. 여성 청결제 사용이 치료의 영역이라 여기지 않는 분들은 애초에 의사에게 이런 질문을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여성 청결제는 치료제가 아니다.
사실 여성 청결제 사용이나 성분과 관련된 의학적 근거를 찾기란 쉽지 않다. 환자가 아닌 건강한 성인 여성을 대상으로 대규모 임상 시험을 진행하는 것이 쉽지가 않을뿐더러 의사들이 관심을 쏟는 영역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나마 최근 진행된 몇 건의 연구도 케이스 발표 수준에 불과하고, 대부분 특정 제품을 생산하는 제조사의 지원을 받아 진행한 연구라 전적으로 신뢰하기도 어렵다.
또 여성 위생, 청결과 관련한 관행은 문화적 차이가 커 어떤 나라에서 어떤 인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나 연구인지도 꼼꼼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여성 청결제의 진실
2013년 충남대학교 간호대학 안숙희 교수가 여성건강간호학회지에 발표한 ‘중년 여성의 여성 생식기 관련 위생과 질 세척 행위’라는 논문에는 국내 여성의 여성 청결제 사용 현황과 관련한 내용이 있다. 현재 생리를 하고 있는 평균 연령 46.8세인 134명의 평범함 중년 여성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 조사에서 ‘질 세척을 하고 있다’고 응답한 경우는 75명(55.9%)으로 하고 있지 않다고 답한 경우보다 더 많았다.
질 세척을 하고 있다고 응답한 경우 가장 큰 이유는 ‘개운한 느낌을 위해(61.3%)’였고 그다음이 ‘냄새를 없애려고(18.7%)’였다. 세척액은 물이 대부분(68.0%)이었고, 여성 청결제(13.3%), 비누액(12.0%), 식초액(6.7%) 순이었다. 빈도는 매일 세척하는 경우가 26.7%, 주당 2~3회도 26.7%였다.
종합해 보면 국내 중년 여성의 경우 7.5%가 여성 청결제를 사용한다는 얘기인데, 여성 청결제 제조사에서 진행했던 연구들에서 50~60%로 보고했던 것보다 훨씬 낮은 비율이다. 물론 20~30대에서는 이보다 사용 빈도가 더 높을 수도 있지만, ‘여성청결제를 사용해 본 경험이 있는 것’과 ‘최초 사용 이후 지속적으 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엄연히 구분해서 보아야 한다.
질 세척이나 여성 청결제 사용과 관련하여 현재까지 명백하게 밝혀진 건강상 이점은 없다. 오히려 정상적인 질내 세균총을 변화시켜 선천적인 면역 방어를 약화시키고 감염에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제품들이 본래의 질 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산성’을 강조하며 질내 미생물군의 균형 유지, 회음부 피부의 수분유지, 세균성 질염 예방 등의 효과를 내세우고 있지만, 이와 관련한 의학적 근거는 아직까지 부족하다.
2010년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 간호학대학에서는 질 세척이 오히려 골반염증성 질환, 자궁내막증, 성병의 위험 증가와 관련이 있다는 부정적인 견해를 발표하기도 하였고, 시중에는 알레르기 등 기존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는 성분을 포함하고 있는 제품도 있다. 특별한 증상이 없다면 굳이 여성 청결제 사용에 연연할 필요가 없고, 냄새나는 질 분비물, 회음부 가려움과 같은 부인과적 증상이 있다면 산부인과 전문의의 진료를 먼저 받는 것이 맞다.
외음부 관리 가이드라인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여성 청결제는 치료제가 아니다. 산부인과 의사로서 ‘좋은 점’보다는 무분별한 제품을 과도하게 썼을 때 ‘안 좋은 점’에 초점을 둘 수밖에 없다. 다음은 2011년 영국 산부인과학회(RCOG)에서 발표한 ‘외음부 관리 가이드라인’을 번역한 내용이다. ‘해야 한다’ 보다는 ‘하지 말라’가 주를 이룬다는 점을 명심하면서 참조하기를 바란다.
1. 외음부 질환(예: 접촉성 피부염, 외음부질염)이 있는 대부분의 여성은 외음부 피부 관리 및 자극물 회피 방법을 알고 있을 필요가 있다.
2. 물로만 세척하면 피부가 건조해지고 가려움증이 악화될 수 있으므로 소량의 비누 대체제와 물을 사용하여 외음부를 세척한다.
3. 샤워를 권장하며, 하루에 한 번만 외음부를 세척한다. 과도한 세척은 외음부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 보습제 사용이 도움이 될 수 있다.
4. 스펀지나 천을 사용하지 말고 손으로 세척한 뒤 부드러운 수건으로 가볍게 두드려 건조한다.
5. 실크나 면으로 된 헐렁한 속옷을 착용하고 몸에 딱 맞는 옷은 피한다. 긴 치마를 속옷 없이 입는 것도 좋다.
6. 속옷을 입지 않고 자는 것을 권장한다.
7. 섬유 유연제와 생물학적 세제는 피하고, 속옷만 별도로 비생물학적 세제로 세탁하는 게 좋다.
8. 외음부에 비누, 샤워 젤, 스크럽, 거품 목욕제, 데오드란트를 과도하게 사용하지 않는다.
9. 일부 일반 의약품 크림(베이비 크림, 기저귀 크림, 티트리 오일, 알로에베라 젤 등)은 자극 물질이 포함된 경우도 있어 사용 전 성분을 확인한다.
10. 생리 중이 아닐 때에 팬티 라이너나 생리대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좋지 않다.
11. 외음부에 방부제가 들어간 제품을 크림 형태로 바르거나 목욕물에 추가하는 것을 피한다.
12. 어두운 염료(검정, 네이비블루)를 사용하여 만든 속옷은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새로 장만한 속옷은 반드시 세탁하고, 가급적 흰색 또는 밝은색 속옷을 착용한다.
13. 색깔 있는 화장지를 사용하지 않도록 한다.
14. 피부를 긁는 버릇이 있는 경우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지 않는다.
* 이 기고는 대한보건협회 <더행복한 건강생활>과 함께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