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기고] '사회적 감염'은 변화를 촉진하기도 한다

한국헬스경제신문 <정과리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작년 9월 13일은 프랑스의 영화감독 장-뤽 고다르(Jean-Luc Godard)가 입적한 날이다. 고다르 감독은 1960년대 ‘누벨 바그(Nouvelle Vague)’라는 영화 운동을 선두에서 이끈 분이다. 이 운동을 통해 영화를 오락거리가 아니라 감독의 철학적 표현으로 보는 ‘작가주의’가 중요한 영화 조류로서 정착하였다.

 

또한 프랑스 영화가 대중적인 인기는 덜하지만, 신선한 영화미를 감상할 수 있는 고급한 ‘다른 차원의 영화’라는 인식을 영화 팬들의 뇌리에 심어 주었다. 이런 변별적 인식은 한국인들에게도 배어있는 것 같다.

 

1978년 길옥윤이 「불란서 영화처럼」이라는 노래를 작곡하여 유행했고, 2014년엔 장윤정이 동명의 다른 노래를 불러 노래방에서 인기를 끌었다. 영화 「프랑스 영화처럼」(신연식 감독, 2016)이 제작되기도 하였다. 고다르 감독을 세계에 알린 출세작은 그의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1960)이다. 이 작품은 당시 젊은 세대의 자유와 일탈에 대한 충동이 공공질서를 교란하면서 자멸과 좌절에 빠지고 마는 상황을 충격적인 범죄 드라마로 만들어 큰 화제가 되었다.

 

베를린 영화제에서 ‘남우연기상’, 이탈리아의 ‘황금 글로브’ 영화상에서 감독상 등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한국을 포함하여 세계 곳곳에서 상영되었고, 그 후에도 TV를 통해 자주 방영되기도 하였다.

 

파리의 건달 ‘미셸(장-폴 벨몽도)’은 미국에서 유학 와 신문팔이를 하면서 공부하는 대학생 파트리샤(진 세버그)와 연애를 하고 있다. 그런데 미셸이 고급차를 훔쳐 달아나다가 교통 위반을 적발하고 쫓아온 경찰을 총으로 사살하는 사건을 일으키게 된다. 미셸은 자신의 범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히 사기와 도둑질 그리고 연애를 이어간다.

 

그러나 결국 경찰의 탐문 수사가 그를 턱밑까지 추격해 온다. 경찰은 미셸의 옆에 한 여인이 있음을 알고 그녀에게 접근하여 추궁하면서 정보를 제공할 것을 압박한다. 파트리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미셸과의 연애에 염증을 느끼기도 해서, 결국 미셸의 위치를 알려주고야 만다. 그리하여 경찰은 미셸을 쫓고, 도망가던 미셸은 대로에서 경찰의 총에 맞아 죽는다. 마지막 장면이다. 죽어가는 미셸이 파트리샤를 보고 입술로 짓궂은 표정을 짓다가 무언가 말하고 숨을 거둔다.


불어가 서툰 파트리샤가 알아듣지 못하고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라고 묻는다. 그러자 경찰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당신이 정말 역겹다(Vous êtes vraiment dégueulasse)는 말이에요”라고 대답한다. 파트리샤는 “역겹다가 무슨 뜻이냐”라고 물으면서 엄지손가락을 세워, 입술 둘레를 시계 반
대 방향으로 한 바퀴 긋는다. 


이때 파트리샤가 마지막으로 한 동작은 미셸이 평소에 버릇처럼 하는 동작이었다. 그걸 보아 온 파트리샤는 ‘역겹다’라고 말을 들은 순간, 부지 중에 그 동작을 모방한 것이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우선 미셸이 ‘파트리샤가 역겹다’라고 말한 게 아니라고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그 말을 하기 직전에 입술로 짓궂은 표정을 지은 데에는 장난기가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즉 미셸은 파트리샤에게 반감을 가진 게 아니라 세상 자체가 ‘역겹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것을 파트리샤에게 한 말로 판단한 것은 경찰의 생각일 뿐이다. 실로 미셸의 마지막 말을 자세히 들으면, “당신이 역겹다”라고 말한 게 아니라, 그냥 “정말 역겹네(Si vraiment dégueulasse)”라고 말한 것으로 짐작된다.

 

이 판단이 옳다면 미셸의 마지막 동작을 통해 파트리샤는 세상이 역겹다는 미셸의 생각에 감염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감염이 무슨 뜻일까? 물론 영화는 여기에서 끝나기 때문에, 파트리샤가 그 다음에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물을 수는 없다. 다만 고다르의 후속작들과 당시 프랑스 사회의 상황을 검토하면, 이런 생각이 사회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바야흐로 1960년대는 2차대전의 영웅인 드골 대통령의 통치가 인습적 도덕주의로 흘러, 젊은이들의 반항심과 창조성을 억누르고 있던 시대였다. 고답적 세계에 대한 반감이 미셸 같은 젊은이에게 충동적인 범죄를 저지르게 한 것이고, 이에 대한 지적 반성 및 예술적 표현이 점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반성과 반항들이 누적되다 보니, 드디어 1968년 5월 혁명이 터지고, 드골 대통령이 사임하게 된다. 요약건대 1960년대 초반 젊은이들의 초법적 반항은 다양한 감염작용을 통해 세상 사람들의 중론을 형성시키는 실마리가 되었고, 그것은 결국 혁명으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감염이 처음 보면 재앙 같지만 때는 진화를 촉진하여 나중에는 사회 개혁을 낳을 수도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으리라.

 

이 기고/기사는 대한보건협회와 함께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