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헬스경제신문 | 이후장 경상국립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법률 해석상 동물은 물건(「민법 98조」)이기 때문에 사람의 의료사고 때와 달리 업무상 과실치상 또는 과실치사죄가 성립되지 않아, 민사소송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배상액이 매우 적기 때문에 소송을 한다 해도 변호사 선임 비용이 더 많이 들고, 보호자가 의료진의 잘못을 입증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늘어나는 동물 의료분쟁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3년 5월 말까지 동물병원 관련 소비자 상담 건수는 총 2163건으로 평균 매년 340여 건에 달했다고 한다. 또 동물병원 관련 소비자 상담의 대부분은 의료분쟁(46.9%)과 진료비(41.3%)와 관련된 내용인 것으로 나타났다.
비슷한 시기에 한국소비자연맹에 접수된 동물병원 피해 구제 신청 988건도 의료행위(46.9%), 진료비(41.3%), 부당 행위(11.8%) 관련이 주를 이루어 유사한 민원이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농림축산식품부가 국정감사에 제출한 ‘반려동물 의료사고 현황’ 자료(2022년 10월)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반려동물 의료사고는 총 30건으로, 유형별로는 치료 효과 미흡이 21건으로 가장 많았고, 원인 불명 또는 진료 후 사망 등이 6건, 과실로 인한 사망이 3건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비슷한 시기에 소비자 단체에 접수된 민원과 피해 구제 건수와 비교하면 차이가 커 정부의 실태 파악이 매우 미흡한 실정이다.
동물병원 관련 분쟁 내용
한국소비자원과 한국소비자연맹에 접수된 피해 구제 신청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소비자가 피해를 호소하는 의료 행위는 주로 오진, 치료 품질, 동물병원 위생 등에 해당되는 것이 가장 많았으며, 진료비와 관련해서는 과다 청구, 과잉 진료, 사전 미고지, 비싼 진료비 등이 대부분이었고, 부당 행위는 진료기록 공개 거부, 진료 거부 등의 내용이 많았다.
또 다른 시민단체인 소비자시민모임이 2021년 1월부터 8월까지 접수된 동물병원 관련 민원 175건을 분석한 결과, 항목별로는 진료비 과다(34.1%), 치료·수술 부작용(22.9%), 오진·검사 오류(14.3%), 진료 중 폐사(11.4%) 순으로 많았다고 한다.
동물병원 이용 만족도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천명선 교수팀이 2023년 8월에 최근 1년 이내에 동물 진료 의뢰 경험이 있는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동물 의료 서비스 만족도와 불만 경험을 조사했다. 그 결과 동물 의료 서비스에 만족한다는 응답이 86.4%, 신뢰한다는 응답이 90.8%를 기록하여 만족도와 신뢰도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동물 의료 서비스로 인한 불만을 경험했다는 응답도 51.8%이었으며, 진료비로 인한 불만(예상되는 총진료비에 대한 사전 설명 없음, 청구된 진료비의 상세 항목 없음, 서비스 대비 청구 비용 과다)을 겪은 응답자 비율 역시 35% 내외로 의료적 요인(검사·치료 과정, 치료 결과)과 비의료적 요인(정보 제공 방식, 의료진의 태도, 검사·치료 논의 방식)으로 인한 불만 경험(25% 내외)에 비해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분쟁의 조정 및 구제
사람 의료분쟁은 조정을 위한 특수법인 형태의 독립기구인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하 의료중재원)’을 설치하여 의료분쟁을 처리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의료분쟁의 조정·중재 및 상담, 의료사고 감정, 손해 배상금 대불 등과 관련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동물 의료분쟁 조정을 위한 전문기관은 설치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다. 최근 정부도 동물의료사고에 대한 전문적인 분쟁 조정의 필요성을 느끼고 지원 체계를 구축할 방침을 세워 놓았다. 2023년 11월 농림축산식품부가 마련한 동물의료개선방안(동물의료개선 종합대책)에, 2025년까지 동물 의료사고 분쟁 조정 지원 민간 조정 기구를 설치하고, 동물 의료사고 대응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배포한다는 계획이 담겨 있다.
이러한 정식 분쟁 조정 기구가 설립되기 전에 서울시수의사회가 회원 동물병원의 동물의료분쟁 대응을 위해 2024년에 위원회를 구성해 지원해 왔고, 올해는 위원회를 정식 기구(가칭, 수의료감정원)로 확대·개편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해결 및 예방 방안
반려동물 관련 의료분쟁이 발생하게 되면, 사람과 같이 분쟁을 중재할 수 있는 기구 설치를 법률적으로 강제해야 하며, 반려동물에 대한 민법상 지위(물건)를 개정하는 것이 시급하다. 반려동물은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동물병원 진료기록부의 발급을 의무화하도록 「수의사법」을 개정해야 한다. 수의사들은 동물진료기록부 공개가 의무화되면 동물 자가 진료에 의한 동물 학대와 약품 오남용이 더욱 심각해질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국민의 알권리 보장, 동물의료 투명성 강화, 반려동물 양육자의 동물병원에 대한 불만 해소 차원에서 진료기록부를 공개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보호자와 수의사가 수시로 상담을 하면서 치료를 하게 되면, 의료 실수를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 만큼, 수의사는 보호자에게 진행하는 치료의 내용, 치료 경과, 치료 결과 등에 대해 설명을 할 필요가있고, 보호자는 수시로 치료에 대한 설명을 요청할 필요가 있다. 이는 반려동물 의료 서비스 질을 높이는 길일 뿐 아니라, 가족 구성원으로서 반려동물을 대하는 사회적 인식의 전환을 이끌어 내는 계기가 될 것이다.
* 이 기고는 대한보건협회 <더행복한 건강생활>과 함께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