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헬스경제신문 윤해영 기자 |
소설·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실제 캐릭터이자 세계 패션계의 ‘교황’으로 통하는 미국 패션잡지 보그의 편집장 안나 윈투어(75)가 37년 만에 편집장 자리를 내려놓는다.
영국 출신인 윈투어는 1988년부터 미국판 보그의 편집장을 지내며 세계 패션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거물이 되었다. 세계 최대 패션 행사인 멧갈라를 총괄하고 있다.
윈투어는 25일 직원회의에서 편집장직 사퇴를 발표했다.
윈투어는 “지금이야말로 제가 회사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순간”이라며 “앞으로 글로벌 리더십에 전념할 것이며, 전 세계 뛰어난 편집장들과 협력하고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그들을 지원하는 데 집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보그 발행사인 콘데나스트의 글로벌 최고 콘텐츠책임자(CCO) 및 보그의 글로벌 편집책임자 역할은 유지한다. 전 세계에 발행되는 콘데나스트 출판물 콘텐츠를 계속해서 총괄 감독하게 되는 셈이다.
로저 린치 콘데나스트 최고경영자(CEO)는 “윈투어가 미국 보그에서 한발 물러나는 것이 그를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에게 시간을 더 할애하기 위한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말했다.
윈투어는 그의 비서였던 로렌 와이스버거가 퇴사 후 쓴 소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로 대중적 관심을 받는 인물이 되었다. 이 소설은 영화로 제작돼 할리우드 배우 메릴 스트립이 윈투어를 연기해 크게 흥행했다.

윈투어는 1976년 하퍼스 바자 패션 에디터, 1986년 영국판 보그 편집장 등을 거쳐 1988년 미국판 보그 편집장으로 부임했다.
윈투어는 부임하자마자 1988년 11월호 보그 표지에 역사상 처음으로 청바지가 등장하는 커버를 선보여 큰 화제를 불렀다. 고급 패션 잡지의 공식에서 벗어나 19세 이스라엘 모델이 1만 달러짜리 값비싼 티셔츠에 50달러짜리 게스 청바지를 입고 등장한 파격적인 커버는 전 세계 패션 업계를 뒤흔들었다.
그는 이전에 선호했던 고급스러운 이미지의 모델이 아닌 대중적인 모델들과 인기 있는 셀럽들을 표지에 올렸다. 또 덜 알려진 디자이너들을 찾아내 키우고, 스튜디오 촬영에서 벗어나 자연스러운 야외촬영을 나서는 등 패션잡지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영국 신문 가디언은 윈투어에 대해 “문화 영역에서 패션의 위상을 크게 끌어올렸다”며 “오늘날 패션이 보여주는 야망과 과감함은 모두 그에게 크게 빚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윈투어는 2020년에는 콘데나스트 글로벌 CCO로도 임명돼 배니티 페어와 GQ, 아키텍처럴 다이제스트 등 뉴요커를 제외한 콘데나스트 산하의 잡지들을 총괄 감독하고 있다. 이외에도 1995년부터는 세계적인 패션 자선 행사인 멧갈라를 총괄하는 등 미디어 및 패션 업계에 독보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는 영국에서 태어나 잡지 편집국장인 아버지 밑에서 성장했고, 런던의 상류층 학교인 퀸스 칼리지에 입학했다. 10대 시절부터 옷에 관심이 많아서 고졸 학력으로 여러 잡지사에서 근무했다. 결국 본인이 그토록 원하던 보그에 취직하고 편집장까지 올라갔다.
특유의 ‘뱅헤어’를 수십 년째 유지하고 있는데 워낙 오래돼 거의 패션 아이콘의 경지에 이르렀고 그를 컨셉으로 한 패션 화보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