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불면의 계절, 차라리 영화 한 편을

  • 등록 2025.08.21 09: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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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증은 현대인들의 고질병.. 영화 '인썸니아'

 

한국헬스경제신문 | 오동진 영화 평론가

 

핫 여름이다. 열대야이다. 불면의 밤이 이어지고 있다. 가뜩이나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여름밤 더위를 더욱 견디기가 어렵다. 불면증 환자가 여름을 더 싫어하는 이유는 해가 길기 때문이다. 일찍 뜨고 늦게진다.

 

7월에는 대략 아침 5시 22분에 해가 떠서 저녁 7시 47분에 진다. 14시간 25분간 밝다. 잠 못 자는 사람들에겐 끔찍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만약 해가 아예 지지를 않는다면? 그리하여 결국 큰 사건을 저지르게 되는 사람의 얘기가 있다. 영화 <인썸니아(Insomnia)>다. 아예 제목이 ‘불면증’인 영화이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 하면 배트맨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와 <인셉션>, <인터스텔라> 그리고 무엇보다 아카데미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7개 부문을 휩쓸었던 <오펜하이머> 같은 대형 작품들로 유명하지만, 그의 초기작은 인간의 어두운 심리를 다룬 미스터리 서스펜스물들로 시작됐다. <메멘토>와 <인썸니아> 두 작품이다.


<인썸니아>는 2002년 작이다. 물경 20년이 훨씬 넘은 영화지만 이 20년 동안 세계에는, 감히 단언컨대, 불면증 환자가 늘었으면 늘었지 절대 줄어들지 않았을 것이다. 불면증은 현대인들의 고질병이며 어쩌면 질병이라기보다 일종의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증후군일 수 있다. 근본적인 치료는 멜라토닌이나 수면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특히 스틸녹스로 대표되는 졸피뎀은 몽유병을 유발하고 음주 후 먹으면 자살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해서 위험한 약으로 분류된다. 인기 배우였던 최진실, 최진영 남매 모두 졸피뎀을 상용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인썸니아>의 주인공 윌 도머(알 파치노)는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은 노회한 형사이다. LA 경찰청 소속 강력반 베테랑이다. 알래스카 연쇄 살인 사건 파견 수사 중이다. 알래스카는 백야이다. 도머 형사는 당연히 수면 리듬을 찾지 못한다. 불면증의 강도가 높아진다. 진한 커피로 잠을 쫓아내려 하지만 곧 의식이 흐릿해진다.


백야 시기의 알래스카에는 안개가 자주 낀다. 출중한 능력의 형사답게 도머는 곧 용의자를 찾아내고 그를 추적하지만, 안개 속 총격전에서 오히려 자신의 동료이자 부하 햅(마틴 도너번)을 사살하게 된다. 도머는 그의 죽음을 살인자 월터 핀치(로빈 윌리엄스)가 쏜 총격 때문으로 둘러댄다. 살인자 월터는 이 우발적 과실치사가 도머에 의한 것임을 안다.

 

도머는 월터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안다. 월터는 또 자신이 알고 있다는 걸 도머가 알고 있고 다시 그것을 자신이 알고 있는데 또 그것을 도머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안다. 형사와 살인자는 서로 거울의 거울의 거울이 된다. 이제 누가 살인자이고 누가 형사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도머의 시야는 늘 흐릿하다. 총기 오발 사고 이후 그는 더더욱 잠을 잘 수가 없다. 불면은 불안을 낳고, 불안은 다시 지독한 불면으로 이어진다. 불면과 불안 역시 거울의 거울의 거울이다.

 

현대인의 불면증은 신경 쇠약을 기반으로 한다. 너무 많은 일을 해야 하고, 너무 많은 생각을 해야 하며, 너무 많은 경쟁과 생존 노동에 시달려야 한다. 그 모든 걸 ‘잘할 수 있을까.’, ‘잘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그 모든 걸 많이 내려놓으면 잠을 푹, 실컷 잘 수 있게 되지만, 다 알다시피, 세상사에서 ‘내려놓기’란 가장 힘든 일이다.

 

불면은 불안증이 모토가 되고 불안증은 욕망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불면증, 당뇨병, 고혈압 같은 현대적 질병 모두 욕망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덜 먹고, 덜 마시고, 덜 자극적이고, 덜 원하는 심리 기조를 지키고 다스리면 모두 없어지거나 차도가 생기는 법이다. 현대인들은 그 모든 걸 약으로 해결하려 한다. 불면증은, 겪어 본 사람들은 알지만, 약이 해결해 주지 않는다.


도머 형사는 자신의 범죄가 언젠가 밝혀질 것이라는 걸 안다. 도덕적 딜레마에 휩싸이고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가 잠을 잘 수 있는 길은 그걸 뱉어 내는 것이다. 고백하는 것이다. 거짓말을 멈추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런의 놀라운 연출력은 도머 대 월터의 물리적 추격전을 심리전으로 치환하고 결국 도머 대 도머 자신의 내면적 갈등으로 전환한다. 거짓이 거짓을 낳는 모습, 그 과정에서 추악해져 가고 퇴락하며 끝내  추락해 가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 낸다. 인간 심리의 서스펜스, 긴장감이 이토록 팽팽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저런 정신 상태에서 어떻게 잠을 자겠는가. 불면은 죄의식의 불안 증세를 벗어나지 않는 한 극복될 수 없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죄의식은 무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다. 항상 누구의 모자람으로 나의 넉넉함이 채워져 왔고 그걸 잘 알면서도 애써 무시하고 사는 사람들이 현대인들이다. 불면증은 의학의 문제라기보다 사회 과학의 문제일 수 있다.


당신은 잘 잠들고 있는가. 오늘도 새하얗게 밤을 지새울 것인가. 잠이 안 온다면 억지로 잠들려고 하지 말라. 차라리 <인썸니아>를 찾아서 보시기 바란다.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OTT)에 있다.

 

* 이 기고는 대한보건협회 <더행복한 건강생활>과 함께 제공됩니다.

이상혁 기자 healtheco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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