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의 역사와 의학] ⑦발암물질 발견과 암 정복

  • 등록 2025.08.12 23:17:12
크게보기

한국헬스경제신문 박건 기자 |

 

‘암’(癌, Cancer, 악성 신생물)은 현대의학이 아직 완전히 정복하지 못한 최악의 난치병이자, 인류의 사망 원인 1위다.

 

무서운 것은 무려 1000여 종에 이르는 발암물질이 우리 일상 곳곳에 널리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55년까지 암환자가 무려 77%나 증가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인간의 육체는 약 20~30개 조에 이르는 정상세포의 분열과 사멸을 통해 유지된다. 세포가 노화하면 스스로 사멸하는 정상세포와 달리, 암세포가 생기면 돌연변이가 발생하여 세포가 죽지 않고 세포분열을 통하여 무한증식하게 되고, 이러한 돌연변이 세포들이 모여 커다란 악성 종양을 형성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부르는 ‘암’이다.

 

암의 종류는 무려 수백 가지에 이르며 신체 어디서나 발병할 수 있다.

 

인류 역사에서 최초로 암의 흔적이 발견된 기록은 고대 이집트였다. 이미 기원전 4천년경에 외과 수술까지 시행한 기록이 있을 정도로 고대 이집트의 의학기술은 매우 뛰어났다.

 

한 유골에서는 이집트 의사들이 머리에 생긴 암을 제거하기 위하여 외과적 수술을 시도한 흔적이 발견됐다. 또한 임산부와 파라오의 미라를 분석한 결과 사망원인이 암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의 의사 히포크라테스는 암을 최초로 정의한 인물이다. 그는 유방암 환자의 증상을 보고 울퉁불퉁해진 피부 표면에서 게의 등딱지를 연상하며, 이러한 악성종양의 이름을 그리스어로 게를 의미하는 카르키노스(Karkinos)라고 명명했다. 이후 시대를 거듭하며 라틴어와 영어로 변형되면서 암은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Cancer’가 공식용어로 자리잡게 된다.

 

히포크라테스가 남긴 암 처방은 ‘치료하지 않고 그냥 놔두는 편이 환자들이 오래 사는 길’이라는 말이었다. 사실상 치료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동양에서는 12세기 남송 시대에 지어진 위제보서(衛濟寶書)라는 의학서를 통해 유방암의 종양이 마치 바위(巖)처럼 딱딱하다는 데서 변형되어 암(癌)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지게 된다.

 

그럼 암을 일으키는 발암물질은 언제 누가 처음 발견했을까.

 

최초로 환경과 암의 연관성을 밝힌 사람은 1775년 영국의 외과의사 퍼시벌 포트(Percivall Pott)라는 사람이다. 그는 굴뚝청소부에게서 흔하게 발생하는 음낭암이 굴뚝 재에 의한 것임을 보고했다. 이는 특정 환경적 물질이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결정적인 첫 사례였다. 주범은 아릴아민(특히 벤지딘, 나프틸아민)이었다.

 

 

20세기 들어와 일본의 야마기와 이치카와는 1918년 토끼 귀에 석탄 타르를 바른 뒤 암이 발생하는 것을 실험으로 밝혀내며, 인공 화학물질 또한 암을 유발할 수 있음을 알렸다. 실험적으로 발암을 입증한 세계 최초 사례다.

 

이어 1930년대 영국의 케나웨이 등이 석탄 타르에서 ‘디벤즈 안트라센’과 ‘벤조피렌’과 같은 순수 화학 발암물질을 분리해냈다.

 

이어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X선과 라듐이 발명·사용되면서 방사선 피폭 종사자에서 피부암, 골육종이 다수 보고되었다. 

 

1960년대엔 닭의 육종에서 루스 육종 바이러스(RSV)가 발견돼 일부 바이러스가 암을 유발할 수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후 인간 암과 연관된 바이러스로 HPV(자궁경부암), HBV·HCV(간암), EBV(림프종·비인두암) 등이 발견되었다.

 

오랫동안 정체된 암 연구에 변화를 불러온 것은 해부학의 발전이었다. 인류가 본격적으로 암을 극복하는 방법을 모색하게 된 것은 종양 제거술의 발전부터다. 15-18세기까지만 해도 외과수술은 종양을 제거하고 상처 부위를 봉합할 수 있는 기술이 미흡했다. 암 환자들은 수술을 받고나면 커다란 흉터와 함께 엄청난 고통에 시달려야 했고 예후도 좋지 않았다.

 

또한 현미경의 발전은 인류가 암을 직접 눈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1838년 독일의 생리학자 요하네스 뮐러가 암의 표본을 현미경으로 관찰하여, 암이 체내 세포에서 시작되어 전이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이로써 인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몸속의 암도 진단할 수 있게 되었고, 암을 조기에 확인하고 제거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종양제거술에 이어 인류가 찾아낸 두 번째 암 치료법은 ‘방사선’이었다. 1895년 에밀 그루브는 엑스선 기계를 이용하여 최초로 유방암 치료법을 발견했다. 그루브는 진공관 공장에서 일하다가 방사선에 노출된 노동자들의 피부와 손톱이 빠지는 걸 목격했고, ‘방사선이 세포를 죽이는 원인이라면, 세포로 이루어진 암도 방사선으로 죽일수 있지않을까’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마리 퀴리는 엑스선보다 1000배나 더 강력한 ‘라듐’ 방사선을 발견하여 암 치료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하게 된다. 인류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방사선 피폭이 인체에 미치는 위험성을 줄이고, 암 치료에 효과적인 방사선의 적정량을 찾게 된다.

 

항암제 시대의 개막은 인류가 암 정복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줬다. 기존의 암 제거술과 방사선 치료가 주로 암이 한 부위에 몰려있을 때 효과적인 치료법이라면, 항암제를 통하여 몸 곳곳에 암세포가 퍼진 전이암에 대해서도 치료가 가능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인류 최초의 항암제는 대량살상무기인 ‘독가스’에서 비롯됐다. 1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생화학무기로 겨자가스라는 독가스를 개발하여 연합군에게 큰 피해를 안겼다. 그런데 독가스로 사망한 시신을 부검한 결과, 체내의 백혈구가 감소한 것을 발견했다.

 

이에 겨자가스를 가공하여 혈액암 환자에게 치료약으로 투여하자 거짓말처럼 상태가 호전되었다. 1949년 질소 겨자는 FDA(미국식품의약국)의 승인을 받아 최초의 항암제가 된다.

 

 

 

 

박건 기자 healtheconews@gmail.com
Copyright @한국헬스경제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

법인명 : (주)국가정책전략연구원 | 제호 : 한국헬스경제신문 | 대표 : 김혁 등록번호 : 서울,아54593 | 등록일 : 2022-12-07 | 발행인 : 김혁, 편집인 : 한기봉 주소: (04520) 서울특별시 중구 무교로 15(남강타워빌딩) 902호 | 전화번호: 02-3789-3712 Copyright @한국헬스경제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