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의료

27세 간호사 다시 ‘태움’ 희생…대통령이 나섰다

경기 광주 병원서 3년간 고통받던 간호사, 지난달 2일 숨져
‘태움’ 호소했으나 병원측은 소극적 대처…퇴사 후 사망
이 대통령, “태움 관습 근절과 엄정한 처벌” 약속

한국헬스경제신문 한기봉 기자 |

 

‘태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시 20대 간호사의 꿈과 생명을 앗아갔다.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나서 간호사 사회의 ‘태움’ 관습의 근절과 엄정한 조사를 지시했다

 

태움은 처음에는 “환자의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엄격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점차 교육을 넘어 직장 내 괴롭힘의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태움이란 병원에서 신입 간호사나 후배 간호사를 강압적이고 모욕적인 방식으로 교육하거나 길들이는 직장 내 괴롭힘 문화를 말한다.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의미에서 나온 은어다. 단순한 업무 지도가 아니라 지속적인 폭언, 공개적인 망신주기, 따돌림, 과도한 업무 부과 등을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 간호사 단체들은 이를 ‘구조적 타살’이라고 비판한다.

 

높은 업무 강도와 인력 부족, 수직적 위계 문화, 폐쇄적 근무환경(중환자실·수술실 등) 같은 간호사 조직의 구조적 요인이 태움 문화를 심화하고 있다.

 

‘태움’이란 말이 처음 전국에 알려진 것은 2018년 서울아산병원 박선욱 간호사 사망 사건이다.

 

입사 약 5개월인 박 간호사는 2018년 2월 설 연휴 기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족은 지속적인 태움이 있었다고 주장했으나 병원은 초기에는 부인했고 이후 자체 조사에서 일부 과중한 업무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이후 근로복지공단이 산업재해로 인정하고 법원도 병원의 사용자 책임을 일부 인정했다.

 

이후 정부와 병원들은 여러 대책을 시행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2019년), 신규 간호사 교육 프로그램 강화, 프리셉터(교육간호사) 제도 개선, 익명 신고센터 운영, 병원 내 인권센터 설치, 정신건강 상담 확대 등이다.

 

◇다시 희생자가 나온 ‘태움’

 

MBC방송이 3년 가까이 태움으로 고통받다 지난달 2일 스스로 세상을 등진 27살 강수빈 간호사의 사연을 6월 29일에 보도하면서 태움이 다시 한번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꿈에 그리던 간호사복을 입고 경기도 광주의 한 병원에서 일을 시작한 강 씨는 입사 직후부터 선배 간호사들의 괴롭힘에 시달렸다고 호소해왔다.

 

강 씨는 동료들이 있는 자리에서 한 선배로부터 “죽을 때까지 태울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강 씨가 남긴 일기장에는 괴롭힘으로 인한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일기에는 “인사를 안 받는다. 불리한 일이 생길까 안 받는 인사 열심히 했다”, “하루하루 지옥 같다. 하지만 그만두면 월세를 못 낸다. 그 지옥으로 계속 뛰어들어야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강 씨는 병원측에 여러 차례 선배 간호사들의 괴롭힘을 호소했으나 병원 측은 잠시 근무를 분리한 것 외에는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말뿐이었다고 한다.

 

강 씨는 끝내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해 4월 퇴사했다. 퇴사 이후 강 씨는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냈고,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다는 사실을 일부 인정받았다. 다만 강 씨가 가해자로 지목한 3명 가운데 1명의 괴롭힘만 인정됐고, 병원측은 그 간호사에 대한 징계로 ‘훈계’에 그친 것으로 전해졌다.

 

강 씨는 이들이 모두 병원에서 그대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뒤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은 강 씨가 퇴사 이후에도 사건의 기억과 처리 결과로 인해 고통을 겪었다고 호소했다.

 

◇대통령의 분노와 진상 규명 지시

 

이재명 대통령은 1일 엑스에 ‘태움에 스러진 27살 간호사 수빈 씨의 이야기’라는 제목의 MBC 보도를 공유하면서 “사람을 살리는 병원에서 누군가는 깊은 상처를 입고 끝내 삶을 포기하길 택했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도, 조직문화라는 이름으로도 ‘태움’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끔찍한 폭력”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즉시 해당 병원에 대한 근로감독에 착수하겠다. 경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불법 행위가 있었는지 한 점 의혹 없이 명확히 규명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또 “유사 위험이 있는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무작위 불시 기획 감독을 실시하겠다”며 “누구나 안전하게, 존중받으며 일할 당연한 권리가 일터에서 지켜질 수 있도록 정부의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즉시 이 병원에 대한 근로감독에 착수했다. 경기지방노동청과 성남지청은 근로감독을 통해 강 씨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 의혹은 물론, 전 직원을 대상으로 추가 피해가 없는지 면밀히 조사할 방침이다.

 

경기남부경찰청도 20명 규모 수사전담팀을 꾸려 이 사건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강 씨 주변인 진술 조사와 휴대전화 확인 등을 통해 실제 괴롭힘이 있었는지 여부를 조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