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헬스경제신문 | 박건우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신경과 교수

토요일이었다. 모처럼 집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아내의 컨디션이 말이 아니다.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 우측 머리가 욱신거리는 두통이다. 머리가 흔들리면 더 아프기 때문에 도통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전형적인 편두통 증상이다. 신경과 의사인 나는 그에 맞는 처방을 내놓는다. 일단 잠을 좀 더 자고, 깨면 커피와 진통제를 먹으라고.
거실에서 책을 읽다가 점심시간이 되었다. 배가 고프다. 아내를 부른다. “여보, 우리 점심 언제 먹지?” 언제 먹긴, 아내가 점심을 차려 줄 때 먹는 거지…. 어렵게 아내가 주방으로 나가면서 한마디 한다.
“내가 얼마나 아픈 지 알아?”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아픈 환자를 돌보는 일이 나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진단하고 처방 내는 일은 나에게 너무나 익숙한 일이다. 그런데 뭔가 낯선 느낌이 밀려왔다.
나는 과연 타인의 고통을 아는가? 아내의 푸념과 질문에 영혼 없는 대답이 나온다. ‘미안, 잘 모르겠어.’ 통증은 의학의 오랜 숙제다. 통증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의학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죽하면 병원에 왜 가냐고 했을 때 “아파서.”라고 답할까?
아픔을 줄이는 진통제는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발전되고 있으며, 수술 중 통증을 잊게하는 마취제도 꾸준히 발전되어 왔다. 그런데 병원에 가도 내가 얼마나 아픈지를 측정하는 기계는 없다. 통증의 정도를 보는 기계가 병원에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많은 사람이 “내가 얼마나 아픈지 아세요?”라고 의사에게 묻고 있는데 그것을 측정하는 기계가 없다니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더욱이 자신의 통증을 측정해 달라고 하는 환자도 사실상 없다. 의학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통증 측정 방법은 숫자통증등급(Numeric Rating Scale, NRS) 또는 시각통증등급 (Visual Analogue Scale, VAS)이 있다.
숫자통증등급은 전혀 안 아프면 0점, 살아오면서 가장 아픈 때를 10점이라고 가정하고 현재의 통증 정도를 0~10점으로 표현하라는 것이고, 시각통증등급은 0~10까지의 눈금선에 표시하라는 방법이다. 너무나 간단하면서도 신뢰할 만한 결과를 낸다고 알려져 있지만, 작은 기능 이상 하나도 엄청난 기계를 동원하는 병원에서 아픈 정도를 표현하고 진단, 평가하는 방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소박하다.
왜 이런 방식을 쓰는 것일까? 이는 아마도 통증의 주관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프다는 것은 감각이기도 하고 감정이기도 하다. 실제로 통각을 느끼는 회로는 말초신경으로부터 뇌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두 가지로 나뉘게 된다. 통증의 위치, 정도를 확인하는 회로와 통증의 기억이나 감정과 관련된 회로가 그것이다. 의학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에는 통증 회로를 끊어 버리면 통증이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통증 회로를 절단하는 시술은 생각만큼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통증의 주관적 느낌은 단지 하나의 회로 문제가 아닌 것이다. MRI 속에 들어갔다 나와도 의사는 환자의 통증 정도를 알아내지 못한다. 그럼 의사인 나는 환자의 통증 정도를 어떻게 알고 치료를 할 수 있을까? 검사 방법이 명백하지 않다면 의사들은 환자의 고통을 어떻게 감지할까? 아니 우리는 어떻게 남의 고통을 느낄 수 있을까?
놀랍게도 우리 모두는 남의 고통을 인지하는 놀라운 고통공감능력(Sympathy)이 있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이심전심의 감정이입능력(Empathy)이 그것이다. 이 능력은 인간이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서로를 돌보게 하는 배려의 능력이다. 다른 동물에서도 발견되지만 인간에게 특히 발달된 능력이다.
인간의 공감능력은 전두엽이라는 뇌의 앞쪽 부위에서 관장한다. 현대 의학은 전두엽 기능에 의한 인간 사회 형성에 대해 많은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의사들은 오랜 임상 경험을 통해 이러한 공감능력을 체득하게 된다.
다만 그 체득한 능력을 얼마나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를 수 있다. 그 능력을 환자는 기가 막히게 알아챈다. “의사가 친절한가? 아니면 불친절한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의사의 공감능력 유무와 그 질적 정도라고 생각한다.
“내가 얼마나 아픈 줄 알아?”라는 아내의 질문은 나로 하여금 나의 공감능력을 점검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결국 의사이든 남편이든, 인간관계의 핵심은 타인의 아픔을 얼마나 진심으로 느끼고 반응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공감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서로를 배려하는 능력이다.
* 이 기고는 대한보건협회 <더행복한 건강생활>과 함께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