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환자와 의사가 직접 만나야 하는 이유

  • 등록 2025.10.19 09: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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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헬스경제신문 | 박건우 고려대 안암병원 신경과 교수

 

10년 이상 파킨슨병을 앓고 계신 분이 있었다. 거동이 점점 불편해지면서 약을 처방받으러 병원
에 오기 힘들어했다. 남편과 아들을 통해 약 처방을 받는 횟수가 늘어났다. 급기야 보호자가 하소
연하듯 “환자가 꼭 병원에 와야 하나요?”라고 물었다. 의사 입장에서 나는 “치료를 제대로 하기 위해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보고 이에 맞게 처방을 하는 것이 바른길이 아니겠냐.”라고 설명을 드리며 이해를 구했다. 그러나 보호자는 무언가 석연치 않은 표정이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 “혹 전화로 상담하고 처방전을 받을 수는 없나요?”


과거에는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런데 최근 “비대면 진료 상시 허용 및 플
랫폼 관리·감독 근거 마련” 등의 내용을 담은 법안 발의로 이슈가 된 단어가 있다. ‘원격의료’이다.
전자매체를 통한 시진과 병력 청취 그리고 인간에서 나오는 생체신호를 측정하고 그 결과를 의사에게 전달하여 환자가 직접 의사에게 가지 않고도 진료를 하는 것을 말한다. IT 기술의 발전이 상상 속에서만 꿈꾸던 진료를 가능하게 하였다.


특히 이에 호응하는 곳이 보건복지부다. 병원에 갈 수 없어서 건강이 위협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책으로 원격의료가 필요하다고 한다. 기관의 의견을 들어 보자.

 

“섬이나 산골 마을에 사시는 분들, 연세가 많으시거나, 장애로 몸을 움직이기가 어려운 분들에
게는 병원에 한번 가는 것도 큰일입니다. 원격의료는 의료 사각지대에 조금이라도 따스한 온기
를 전하려는 작은 노력입니다. 원격의료는 동네 의원 중심으로 추진합니다. 특별한 기계를 사지
않아도, 집에 있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진찰을 받을 수 있습니다. 환자들이 큰 병원에만 몰릴
까 봐, 잘 모르는 선생님을 만날까 봐, 제대로 봐 주지 못할까 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데 의사로서 나는 은근히 걱정이 되는 것이 있다.
‘과연 안전할까? 효과적일까? 혹 놓치고 있는 가치는 없는가?’
의대 졸업식 때, 의사로서의 소명과 윤리를 지키겠다는 마음을 다지기 위해 히포크라테스 선서
를 한다. 그 선서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이렇다.


“나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내 환자의 이익이 되는 치료법만을 사용할 것이며, 다치게 하거나
잘못되도록 하는 치료법은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 내용의 주안점은 해가 되는 치료를 하지 않는 것, 즉 안전함을 추구하는 것이 의료 행위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현세대가 볼 때 복잡하고 짜증 나는 안전 수칙은 전 근대적이고 귀찮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은 생명이기에 편리함보다 안전을 의료의 기본으로 삼는 것이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사용하면 편리하겠지만, 조금 더 시간이 들고 귀찮더라도 보고 듣고 만져서 환자의 불편함을 알아보려는 의사들의 기본 성향이 원격의료를 우려 섞인 눈으로 보게 하는 것이다.


물론 기술이 더 발전하면 안전성 문제도 결국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우려가 있다. 효과에 대한 것이다. 의사는 단순히 약을 처방받기 위해 만나는 사람은 아니다. 올바른 처방을 받기 위해 만나는 사람이다. 즉 의사를 만나는 것은 약 이외에 다른 치료적 측면이 있다. 바로 기대 효과이다. 의학에서 논란이 되는 것 중에 ‘위약 효과’라는 것이 있다. 그간 다양한 임상 실험에서 얻은 결과를 보면, 가짜 약을 주어도 효과가 있는 경우가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70%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가짜 약이 효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기대 효과 때문이다. 의사가 내 병을 고쳐주리라는 믿음, 그 의사의 처방이 병을 치료할 것이라는 희망이 긍정적인 신체 반응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비록 의사를 만나러 가는 불편함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불편함을 감내하도록 하는 희망과 기대가 환자 스스로 나아지게 하는 뇌의 변화와 신체의 변화를 가져온다. 올바른 약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려면 환자 내면에서 낫고자 하는 기대와 희망이 작동해야 한다. 단지 처방전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의사를 만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제대로 된 치료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불편함을 뛰어넘는 만남에 대한 희망이 있어야 한다.

 

어떠한 의료 행위가 되었든 안전, 희망, 믿음은 강력한 치료 효과를 나타낸다. 치료를 위해서는 편리라는 가치보다 효과라는 가치가 더 우선되어야 한다. 어떤 이들은 몸이 불편한 환자가 병원을 찾는 것은 힘든 일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원격의료가 대안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의사의 세심한 관찰 그리고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는 과정이 빠진 치료는 효과가 단편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몸이 불편한 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대안은 재택의료이다. 환자가 병원에 못 오면, 의사가 찾아가는 의료가 필요한 것이다. 원격의료의 편리함보다는 재택의료의 신뢰성이 환자를 치유하는 효과가 더욱 크다. 모든 의료 행위의 기본에는 환자와 의사 상호 간의 믿음이, 발전적인 치료를 위한 동맹 관계의 굳건함이 전제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 이 기고는 대한보건협회 <더행복한 건강생활>과 함께 제공됩니다.

김혁 기자 healtheco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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