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뷰티

“요리란 삶에 대한 이야기다”

조영학 번역가 ‘아내를 위한 레시피’ 출간
다친 아내 위해 20년간 살림 도맡아

한국헬스경제신문 한기봉 기자 |

 

“요리란 그저 음식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텃밭 역시 단순히 농작물을 가꾸는 일이 아니다. 모두 삶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사람과 자연을 이어주는 일이다. 살림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사소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지 깨닫게 해주는 일이다. 나는 살림을 하면서, 요리를 하면서, 김서령 작가가 말하는 삶의 맛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행복이 어떻게 우리를 찾아오는지 느낄 수 있었다. 여기에 실린 얘기는 그런 얘기들이다. 맛이 아니라 삶을 요리하는 레시피. 행복을 찾기 위한 레시피다. 모두가 나름의 레시피를 찾아 행복하기를 빌어본다.”

 

저자가 ‘들어가는 글’에 쓴 말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번역가 중 한 명인 조영학씨는 요리하기 전까지는 평범한 가부장 중년이었다. 그는 20년 전 아내가 발을 다쳐 거동이 어려워지자 살림에 뛰어들었다. 자신이 무슨 큰일을 할 사람도 아닌데 남은 삶은 아내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 써보자며 부엌을 도맡았다. “그저 미안하고 고마워서”라고 했다.

 

 

그가 살림을 접수한 날부터 이제까지의 이야기를 글로 담은 책 ‘아내를 위한 레시피’를 냈다. 2022년부터 여성신문에 연재한 글을 묶은 것이다. 책의 부제는 ‘펜 대신 팬을 들다’이다.

 

1부에는 아내를 위한 밥상 차리기 이야기가, 2부에는 텃밭을 가꾸며 삶을 음미하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저자는 처음에는 아내에게 당당하게 “부엌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으나 허둥대기 일쑤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쉬운 일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아내를 위해, 가족을 위해 밥상을 차리면서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살림이란 곧 가족을 위해 사랑과 배려를 표현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가족 간의 유대감과 사랑이 깊어지고, 이로 인해 평화가 찾아온 것은 자신이 부엌을 차지한 덕분이었다.

 

“내가 떠난 후 아내와 아이들은 내 부재보다 내 손맛을 더 기억하지 않을까”라는 문장이 감동적이다.

 

그는 중년 남성들에게 요리하기를 권한다. “남자가 살림을 맡으면 가정에 평화가 찾아온다”는 게 지론이다.

 

텃밭을 가꾸는 일도 살림처럼 만만찮은 일이었다. 잠시라도 자연과 가까이하고 싶은 욕구에서 소일거리로 삼으려고 했는데, 이제는 즐거운 노동이 되어버렸다.

 

그는 “텃밭을 가꾸는 일이 취미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 철학을 탐색하는 여정과 같다”고 말한다. 해마다 찾아오는 가을걷이를 통해서, 자연의 리듬에 따라 느리고 불편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면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일이 삶의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배웠다.

 

이 책이 단순한 요리책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이 책이 누군가에게는 대리만족이 되고 누군가에겐 갈증이 될 수도 있겠다. 왜 저렇게 사나, 한심하게 보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어느 날 난 선택했고 그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아내가 변하고 가족이 변하고 무엇보다 내가 변했다. 생계 수단에 불과했던 밥상 위에 얼마나 많은 가치와 의미가 있는지 깨닫기도 했다. 선택은 늘 그렇듯 기적을 만들어낸다.”

 

“맛있는 음식에는 노동의 땀과 나누어 먹는 즐거움의 활기, 오래 살던 땅, 죽을 때까지 언제나 함께 사는 식구, 낯설고 이질적인 것과의 화해와 만남, 사랑하는 사람과 보낸 며칠,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궁핍과 모자람이라는 조건이 들어 있으며, 그것이 맛의 기억을 최상으로 만든다.(황석영의 말)”

 

“집에서 가족을 위해 음식을 해본 사람은 안다. 흔히 집밥이라 부르는 하찮은 음식이 사실은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하며 그 음식을 제대로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고민과 전문 기술이 필요한지. 출판번역을 이십 년 붙들고, 야생화를 십오 년 이상 쫓아다니고, 텃밭 재배를 십 년 넘게 했지만, 집밥만큼 고급 기술이 필요한 일은 단연코 없었다. 게다가 집밥이야말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도 부엌일을 하찮게 여기고 “집에서 밥이나 하는 여자들” 운운하다니!”

 

조영학씨는 스티븐 킹, 존 르 카레 등 소설 및 인문서를 90여 편 번역했고 여러 매체에 글을 써왔다. 경기도 남양주에서 아내와 살며 매주 한 번 가평 텃밭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