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74세에 칸 영화제 명예황금종려상...위대한 배우 메릴 스트립

“영화 속 여성 보는 방식 바꿔”
영화계 성차별 고발, 사회운동에 적극 참여

한국헬스경제신문 한기봉 기자 |

 

‘디어 헌터’(1978),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1980·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프랑스 중위의 여자’(1982), ‘소피의 선택’(1983·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아웃 오브 아프리카’(1985), ‘죽어야 사는 여자’(1992),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1995),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 ‘맘마미아’(2008), ‘줄리&줄리아’(2010), ‘철의 여인’(2012·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더 포스트’(2018), ‘작은 아씨들’(2019)…

 

올해 74세가 된 메릴 스트립의 필모그래프(영화 목록)다. 그는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배우 중 한 명이다. 한국 관객한테도 사랑받는 여배우다. 연기력과 가정생활, 사회생활 모든 영역에서 가장 존경하는 롤 모델로 그를 뽑는 후배 배우들이 많다.

 

14일 프랑스 지중해 연안 휴양도시 칸에서 열린 제77회 칸 국제영화제.

 

개막식 주인공은 이제는 원로배우의 반열에 접어든 메릴 스트립이었다.

 

 

그는 자신이 출연한 영화 장면이 나오는 걸 바라보면서 이렇게 수상 소감을 밝혔다.

 

“마치 초고속 열차의 창밖을 바라보는 것과 같아요. 35년 전 제가 칸에 처음 왔을 때 저는 이미 세 아이의 엄마였고, 마흔이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제 커리어는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여배우들에겐 그게 비현실적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경력단절 위기를 딛고 나이를 먹을수록 더 많은 갈채를 받은 배우다.

 

“오늘 밤 제가 이 자리에 있는 유일한 이유는 저와 함께 일한 재능 있는 예술가들 덕분입니다. 관객들에게도 많은 빚을 졌습니다. 여러분이 제 얼굴에 질리지 않고 열차에서 내리지 않아 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시상자로 나선 프랑스 배우 줄리엣 비노쉬는 눈시울을 붉혔다.

 

“당신은 우리가 영화 속 여성들을 보는 방식을 바꿨어요. 여성들이 영화를 통해 자신을 다르게 볼 수 있도록 도와줬습니다.”

 

비노쉬가 울먹이자 개막식에 참석한 여성 영화인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눈물을 흘렸다.

 

스트립은 여성들의 연대와 사회참여에 적극적이었다. 영화계 내 성차별에 대해 공공연하게 비판해왔고, 미투 운동 때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반핵운동, 환경운동에 앞장 섰고 정의로운 싸움을 위한 정치적 언행도 서슴지 않았다. 여성의 유리천장을 깨는 데도 앞장섰다. 연기력과 성실과 품격으로 비교 불가의 권위를 지닌 배우다.

 

가정생활도 다른 할리우드 배우들과 달랐다. 데뷔 초 ‘대부’ 시리즈의 프레도 콜레오네 역을 했던 배우 존 카제일과 연인이었는데 그가 골수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3년간 같이 살며 간호했다.

 

그가 사망한 후 1978년 예일대 아트스쿨 출신인 조각가 돈 거머와 결혼해 40년 넘게 해로하며 4명의 자식을 낳았다. 자녀들 모두 모델과 배우, 가수로 활동 중이다. ​​이혼이나 스캔들이 다반사인 할리우드에서 보기 드문 사례다.

 

명예황금종려상은 세계 영화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나이가 든 거장에게 수여되는 일종의 공로상이다.

 

1997년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 예술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이 처음 이 상을 수상한 이후 우디 앨런, 카트린 드뇌브, 제인 폰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 알랭 들롱, 조디 포스터, 톰 크루즈, 해리슨 포드, 조지 루카스 감독 등이 받았다.

 

메릴 스트립은 1988년 ‘어둠 속의 외침’에서 유아 살해범으로 억울한 누명을 쓴 인물을 연기하며 칸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뒤 이날 35년 만에 무대에 수상자로 섰다.

 

연극배우로 경력을 시작한 그는 1977년 영화 ‘줄리아’로 데뷔한 후 50여 년간 아카데미상 후보에 21차례 오른 최초의 대기록을 썼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선 31번 노미네이트 되어 8번 수상했고 비평가상과 그래미상 등 각종 시상식에 노미네이트되고 수상했다. 베를린 영화제에서도 3번 수상했다.

 

12일간 22개 작품이 경쟁에 올라 황금종려상을 두고 경합을 벌이는 이번 칸 영화제에 한국 영화는 이례적으로 경쟁부문은 물론 주목할만한시선, 비평가주간 등 주요 비경쟁부문까지 한 작품도 초청받지 못했다.

 

상업적 대작 영화를 상영하는 미드나잇스크리닝 부문에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2’, 영화계의 유산을 기리는 칸 클래식 부문에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청년, 동호’가 초대됐을 뿐이다.

 

한국 영화는 그간 칸 영화제에서 사랑받아왔다. 2000년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이 한국 영화 최초로 경쟁부문에 진출한 뒤 2년에 한 번씩은 경쟁부문에 진출했고 많은 상을 받았다.

 

2004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심사위원대상을,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시’가 각본상을, 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2022년에는 송강호가 ‘브로커’로 최우수남자배우상을, 박찬욱 감독이 ‘헤어질 결심’으로 최우수감독상을 한 무대에서 받았다. 2007년에는 전도연이 ‘밀양’으로 최우수여자배우상을 받아 ‘칸의 여왕’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