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헬스경제신문 윤해영 기자 |
온라인 서점 교보문고와 예스24가 10일 저녁 잠시 접속이 되지 않았다. 한강의 소설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한순간에 몰렸기 때문이다. 서점측은 재고가 충분치 않아 급히 출판사에 연락해야 했다.
이날 저녁 스웨덴 한림원이 소설가 한강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는 발표를 한 직후 벌어진 일이다.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었다.
한국 작가들은 2000년대 중반부터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가장 큰 기대를 모은 작가는 고은 시인이었다. 노벨문학상 발표 날에는 그의 자택에 기자들이 몰려가 대기하곤 했다.
소설가 황석영도 가능성 있는 후보로 자주 거론됐다. 특히 그의 최근 작품 ‘철도원 삼대’는 한반도 백 년의 아픈 역사를 삼대에 걸친 이야기로 형상화해 수상의 기대감을 키웠다.
여성 작가들로는 김혜순 시인과 소설가 한강이 최근 언급되어 왔다. 김혜순 시인은 지난 3월 미국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해 급부상했고, 한강 역시 2016년 ‘채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노벨문학상·프랑스 공쿠르상) 중 하나인 영국의 맨부커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 인지도를 높였다.
한국 대중문화가 세계적 인정을 받아가면서 더욱 고대해 왔던 노벨문학상의 염원이 결국 결국 한강(54) 작가를 통해 이뤄졌다.
한국 문학계의 최대 경사이자 대중문화에 이어 한국의 순수문화 수준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계기가 됐다.
전문가들은 올해 노벨문학상이 비서구권 여성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고 점쳤는데 한강의 수상으로 그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지난해 노벨문학상은 노르웨이 남성 극작가 욘 포세가 받았는데, 2012년 이후 매년 남녀가 번갈아 상을 받았기에 올해 여성이 탈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했다.
그간 노벨상은 서구의 백인 남성 주류에 편향되어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평화상과 문학상을 제외한 순수과학 분야에서 여성 수상자의 비율은 5%에도 미치지 못한다. 202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여성 작가 아니 에르노는 “노벨상은 남성을 위한 것”이라고 수상 소감에서 지적하기도 했다.
노벨 문학상은 1901년부터 올해까지 총 117차례 수여됐는데 수상자는 121명이다. 한강은 여성 작가로서는 역대 18번째 수상자다. 아시아 국적으로는 2012년 중국 작가 모옌 이후 12년 만이며 아시아 여성 작가로는 처음이다.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프랑스가 16명으로 가장 많다. 이어 미국 13명, 영국 12명, 스웨덴 8명, 독일 8명 등 수상자 대부분이 미국, 유럽 작가였다.
한국인이 노벨상을 받은 건 2000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에 이어 두 번째다.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을 수상자로 발표하면서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의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는 표현으로 선정 이유를 밝혔다.
한림원은 이어 “한강 작가는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간의 연결에 대해 독특한 인식을 지니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됐다”고 부연했다.
한강은 과학자이자 노벨상 창시자인 알프레드 노벨이 1896년에 사망한 기념일인 12월 10일에 스톡홀름에서 상을 받게 된다. 상금 1천100만 크로나(약 13억 4000만 원)와 메달, 증서가 수여된다.
◇한강과 작품세계
1970년 11월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영화가 된 ‘아제아제바라아제’를 쓴 유명 소설가 한승원씨(85)다. 오빠 두 명도 작가인 문학가 집안이다.
한강은 어린 시절 서울로 올라와 풍문여고를 거쳐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잡지사 ‘샘터’에서 근무하다 1993년 계간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시를 발표해 등단했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붉은 닻’이 당선되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를 하다 전업작가가 됐고 스페인 산클레멘테 문학상, 프랑스 메디치외국문학상, 이탈리아 말라파르테문학상 등 해외 유수의 문학상과 국내에서는 이상문학상, 황순원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등을 받으며 가장 주목받는 한국 문인 중 한 명으로 떠올랐다. 한승원-한강 부녀는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유일한 가족이다.
2016년 ‘맨부커상’ 수상작 ‘채식주의자’는 트라우마를 지닌 한 여자가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극단적인 채식을 하는 이야기다. 심사위원들은 “잊히지 않는 강력하고 근원적인 소설로 아름다움과 공포가 기묘한 조화를 이룬 서정적이면서도 통렬한 작품”이란 찬사를 보냈다.
한강은 초기작부터 일관되게 인간의 폭력성과 그에 따른 상처를 작품으로 다뤄왔다. 한강은 한 인터뷰에서 이 같은 작품세계가 형성된 계기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었다고 말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2014년작 장편 ‘소년이 온다’와 제주 4·3 사건의 비극을 세 여성의 시선으로 풀어낸 2021년작 ‘작별하지 않는다’ 등으로 한국 현대사의 깊은 어둠과 상처를 소설로 형상화했다.
그 밖의 대표작으로는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그대의 차가운 손’, ‘검은 사슴’,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