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

HIV감염인, ‘장애로 인정해 달라’ 행정소송 시작

HIV, 장애인복지법에 제외돼
70대 감염인, 지자체 상대 소송 제기
틱장애는 대법원서 장애로 인정돼

한국헬스경제신문 한기봉 기자 |


국내 생존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에이즈) 감염인은 2022년 말 기준 1만 5,880명이다. 매년 700~1000명 정도 새로 발생한다. 남성이 90% 이상이다. 99%가 성접촉으로 감염됐는데 20대 후반~30대 초반이 가장 많다.

 

2022년에 새로 신고된 HIV 감염인은 1,066명으로 전년(975명) 대비 9.3%(91명) 증가했다.

 

HIV는 치료제가 개발돼 충분히 관리가 가능해진 만성 감염질환으로 분류된다. 국가도 예방 및 조기 발견·치료에 역점을 두고 있다.

 

HIV를 장애로 인정해달라며 한 감염인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국내에서 처음 진행되는 소송이다.

 

대구지법 행정단독(부장판사 배관진)은 18일 A씨가 대구광역시 남구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반려처분 취소 청구 소송의 첫 변론기일을 진행했다. 양측의 의견을 확인한 재판부는 2차 변론기일을 다음 달 29일 오후로 지정했다.

 

지난해 10월 HIV 감염인 A씨(72)는 대구시 남구의 한 주민센터에 장애인등록신청을 하러 갔다. 그러나 주민센터는 장애 정도 심사 구비서류(장애진단 심사용 진단서)가 없다는 이유로 반려했다.

 

심사용 진단서는 보건복지부 고시에 따른 장애정도 판정 기준에 따라 발급한다. 그 기준에 HIV 감염은 포함돼 있지 않아 발급할 수 없다.

 

A씨는 HIV 감염으로 인한 우울증·말초신경염·골다공증·당뇨 등 7가지 합병증 증세를 담은 의사 소견서를 들고 다시 주민센터를 찾았지만, 접수조차 할 수 없었다.

 

이에 A씨와 HIV 장애 인정을 위한 전국연대는 반려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HIV 감염인이 장애인복지법 제2조에서 정한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에 해당하는지가 재판의 쟁점이 될 전망이다.

 

A씨 변호인은 “HIV 감염인은 감염과 치료 과정에서 겪게 되는 각종 질환으로 신체적 어려움을 겪고 사회적 낙인 차별로 사회적 관계를 맺기 어려워 정신적 스트레스 및 우울증 등을 경험한다”며 “장애인의 정의에 의심의 여지 없이 해당한다”고 말했다.

 

또 “시행규칙에 규정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예외적 인정 심사를 거치지 않고 장애인 등록 신청을 거부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장애 정의와 기준을 객관적으로 포섭하지 못하는 시행규칙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레드리본인권연대는 이날 법원 앞에서 HIV 감염인 장애 인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유엔이 인정한 HIV 감염 장애, 한국 정부도 인정하라”며 HIV 감염인 장애 등록을 촉구했다.

 

이들은 “HIV가 여러 질병을 동반함은 물론, HIV 감염인의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으나 그들을 위한 돌봄과 요양의 지원은 전무하다”며 “사회의 차별로부터 발생하는 HIV 감염인의 정신적 질환의 발생 수치는 매우 높으며 이는 HIV 감염인을 사회로부터 분리·단절시키고 사회생활에 제약을 가해 사회적 장애의 상태에 놓이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이번 소송으로 해외의 HIV 장애 인정 사례와 국내 예외적인정 조치(투렛 증후군, 복합부위통증증후군 등)의 판례를 통해 ‘장애’ 정의를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게 해석해 현 제도에서 배제된 HIV 감염장애인을 비롯해 등록에서 배제된 장애인의 권리 보장의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틱장애(투레트증후군)는 소송을 통해 장애로 인정받았다. 지난 2019년 당시 장애 유형에 포함되지 않았던 틱장애 환자가 낸 소송에서 대법원은 “해당 장애를 가진 사람이 장애인복지법 제2조에서 정한 장애인에 해당함이 분명하고, 해당 법이 그 장애를 법의 적용대상에서 배제하려는 취지로 볼 수 없다. 시행령 등에 규정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장애인 등록 신청을 거부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보건복지부는 2021년 틱장애를 장애 유형으로 포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