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의료

“이제는 병원 갈 때 주민증 꼭 챙기세요”

20일부터 병의원 환자 신분 확인 의무화
시행 첫날…고령층 새 환자들 혼란도 발생
의료계는 반대, “책임을 병의원과 국민에게 전가”

한국헬스경제신문 한기봉 기자 |
 

정부가 예고한 대로 5월 20일부터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때 신분증을 제시해야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게 됐다.

 

제도 시행 첫 날인 이날 각급 병원에서는 적지 않은 혼란이 발생했다.

 

“주민등록증 안 가져왔는데…. 10년째 이 병원에 다니는데 오늘 정말 진료 못 받나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왔는데 어떻게 다시 집에 갑니까. 의사선생님이나 간호사들도 다 내 얼굴을 아는데 왜 못 믿나요.”

 

이런 실랑이들이 많이 목격됐다. 신분증을 가져오지 못했거나 신분증을 분실한 사람은 되돌아 가는 일도 생겼지만, 대다수는 휴대폰에 모바일 건강보험증 앱을 깔아 신분을 확인했다.

 

스마트폰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 환자들은 직원 도움을 받으며 본인 인증 등을 거쳐 건강보험증을 다운 받는 데 10분 가량 걸렸다.

대다수 병의원들은 혼선을 막기 위해 예약 환자에게는 사전에 문자메시지로 내용을 알렸고 입구에 안내문을 붙였다.

 

이날부터 개정 국민건강보험법이 시행되며 모든 의료기관을 방문할 때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여권 같은 사진이 붙은 신분증이나 모바일 건강보험증이 있어야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게 됐다.

 

타인 신분을 도용해 향정신성의약품 등을 처방받거나 해외 거주자 등이 지인 명의로 건강보험 혜택을 악용하는 걸 막기 위한 조치다.

 

 

◇구체적 내용은?

 

한 번 본인 확인 인증을 한 병원에서는 6개월 동안은 다시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19세 미만 환자이거나 응급환자, 거동 불편자, 중증장애인, 장기 요양자, 임산부 등은 예외적으로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아도 된다. 외국인은 사진과 외국인등록번호가 포함된 증명서를 제출하면 된다.

 

처방전으로 약국에서 약을 사는 경우나 진료 의뢰 및 회송받는 경우, 신분 확인을 하지 않아도 된다.

 

신분증이 없어도 진료를 받을 순 있지만 건강보험 적용이 안 돼 평소의 3~4배인 진료비를 내야 한다. 14일 내 신분증과 진료비 영수증 등을 제출하면 건강보험이 사후 적용돼 돈을 돌려받을 수 있지만 다시 병원을 방문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일부 병원은 얼굴을 잘 아는 환자는 신분확인 없이 진료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적발되면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8월 19일까지는 계도기간이라 과태료를 부과하진 않는다. 다만 요양기관이 본인확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신분증인 것을 인지하지 못하면 과태료 및 부당이득금을 부과하지 않아도 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건강보험증 대여·도용 적발 사례는 지난해만 4만 418건에 달했다. 외국인이 2년 넘게 내국인 명의로 진료 및 처방을 받은 사례들도 적지 않았다.

 

건강보험 자격을 부정하게 사용하면 대여해 준 사람과 대여받은 사람 모두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의료계는 반대

 

의료계는 이 제도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충분한 사전 준비와 협의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시행한 데 대해 불만이 많다.

 

일부 부작용을 막는다는 이유 하나로 모든 부담을 병의원과 환자에게만 전가한다는 것이다.

 

별도의 본인확인에 인력과 시간이 필요한데 정부가 지원해주는 건 없다. 고령층 신규 환자가 많은 동네의 병의원은 환자들의 신분증 지참률이 낮고, 모바일을 잘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스마트폰에 공동인증서·금융인증서·간편인증이 등록되지 않은 사람도 적지 않은데 이 경우 본인확인을 거쳐 앱을 까는 데 10~20분이 걸린다. 직원 한 명이 붙어서 도와줘야 하는 것이다.

 

접수처 직원이 한 명뿐이라면 환자가 밀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신분증을 미지참한 환자를 돌려보낼 수다. 진료 거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본인확인이 안 되는 환자는 건강보험 적용 없이 100% 본인 부담으로 진료를 볼 수 있지만, 이 역시 의료기관의 업무 부담을 키운다. 환자가 다시 신분증을 들고 14일 이내 재방문한다면, 건강보험금이 적용된 만큼의 차액을 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2주 동안 공단에 청구도 못 한다,

 

의료기관이 본인확인을 하지 않을 시 최대 1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되는 것도 문제로 지적한다. 보상금을 타내려는 파파라치가 등장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또 모바일 건강보험증에는 본인 사진이 없고 다른 사람 스마트폰에도 설치할 수 있어 ‘반쪽짜리’ 본인 확인이란 비판도 나온다.

 

대한개원의협의회 김동석 회장은 “회원들 반응이 상당히 격앙돼 있다. 현실적으로 맞지도 않고 아파서 온 국민을 신분증으로 진료하느니 마느니 하는 것은 장난질이나 다름없다. 보험 도용으로 재정이 누수된다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직접 구상권을 청구해 해결할 일이지 왜 의료기관에게 돈을 받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 성혜영 대변인은 “이 제도의 문제점을 계속해서 알려왔지만, 정부가 일방적으로 시행했다”며 “제도를 도입하기 전 미리 시연하고 부작용을 해결해야지 무조건 법만 만들고 시행은 알아서 하라는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