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그렇다고 아이 낳을까...필리핀 가사도우미 100명 입국

4주간 교육 후 9월3일부터 일해
최저임금 보장, 공동숙소에서 출퇴근
돌봄의 외주화, 인권문제 등 우려 커

한국헬스경제신문 김기석 기자 |


홍콩이나 싱가포르처럼 우리나라도 가난한 동남아의 여성 인력을 들여와 아이를 돌보게 하는 시대가 왔다.

 

119만 원만 내면 주 5일 4시간, 238만 원을 내면 주 5일 8시간 가사와 육아를 도와주는 필리핀 젊은 여성 100명이 6일 한국땅을 밟았다.

 

영어가 유창하고 한국어 의사소통이 어느 정도 가능하며 자국에서 돌봄 전문 교육을 이수한 24~38세의 고학력자들이다.

 

서울시와 고용노동부가 추진하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따른 첫 입국자들이다.

 

정부의 목적은 맞벌이 부부의 돌봄 비용을 줄여 출생률을 높이자는 것이다. 올해는 시범사업으로 100명이지만, 내년부터 1200명의 외국인 가사도우미(caregiver)가 들어온다.

 

필리핀 상징색인 파란색 자켓을 단체로 맞춰 입고 입국한 이들은 설레는 표정으로 공항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돈도 벌고 한국문화를 체험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은 7일부터 4주간 경기도 용인 교육장에서 160시간의 교육을 받고 9월 3일부터 내년 2월 말까지 6개월간 원하는 가정에서 가사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들이 받는 교육은 안전보건 및 기초생활법률, 성희롱 예방교육, 아이돌봄·가사관리 직무교육, 한국어(초·중급) 및 생활문화교육 등이다.

 

현재까지 필리핀 가사관리사를 고용하겠다고 신청한 서울시 소재 가정은 422가구다. 경쟁률을 약 4대 1이 됐다. 상당수 가정은 가사와 아이돌봄 외에도 이들이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기 때문에 영어 조기교육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을 고용한 가정은 시간당 최저임금(9860원)을 지급한다. 4대 사회보험 등을 포함 1일 4시간 이용 기준으로 월 119만 원 정도를 부담하면 된다. 하루 8시간 고용하면 238만 원 정도를 내야 한다. 이들은 하루 8시간 주 5일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주 52시간을 초과해 일할 수 없다. 서울 강남구 역삼역 인근 공동숙소의 1인실이나 2인실에서 지내며 출퇴근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내년 상반기까지 1200명을 목표로 고용허가제를 통해 E-9(비전문인력) 비자를 가진 외국인 돌봄 인력을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또 5000명 규모 시범사업을 통해 외국인 유학생과 근로자의 배우자에게 가사 돌봄을 허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런 정책이 ‘저출생 해소’라는 정책 취지와는 거리가 멀고, 이주노동자의 안전과 인권이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하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가사관리사 고용 정책이 돌봄을 값싸게 외주화해서 공공 돌봄을 위축시키고, 돌봄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저임금으로 동남아시아 여성을 이용하는 성·인종차별이며, 돌봄 노동의 가치를 낮게 보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국내에서 가사도우미를 쓸 경우 거의 1.5배~2배의 금액을 부담해야 한다.

 

보장된 최소 급여 수준이 한국의 높은 물가 수준을 고려하면 충분하지 않다는 목소리도 있다. 외국인 근로자도 최저임금을 적용받지만 숙소비를 비롯한 생활비는 가사관리사들이 직접 부담해야 한다. 이들이 내는 숙소비는 월 40만 원 전후로 여기에 교통비와 식비·생활비 등 물가를 감안하면 한 달 생활에 드는 비용은 100만 원을 넘을 수도 있다.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의 업무 범위가 명확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고용노동부와 필리핀의 이주노동자부가 체결한 협약서에 따르면 아이 돌봄 외에도 ‘부수적이고 가벼운 가사서비스는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가사관리사를 고용한 업체의 기준을 보면 설거지, 세탁, 단순 물청소 위주의 욕실 청소 등이 가능하다. 하지만 쓰레기 배출, 어르신 돌봄, 어른 음식 조리, 손걸레질 등은 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이같이 범위가 모호하다 보니 현장에서 충돌이 빚어질 우려가 있다.

 

김선순 서울시 여성가족실장은 “고국을 떠나 낯선 서울 생활을 시작하는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라며 “가사관리사 서비스를 이용하는 가정에도 만족할 만한 돌봄·가사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