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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의 역사와 의학] ① ‘20세기 최고의 의약품’ 페니실린의 발견

1928년 플레밍이 우연히 푸른곰팡이 효능 발견
항생제 발전의 시발점이 돼

한국헬스경제신문 한기봉 기자 |

 

스코틀랜드 출신 병리학자 알렉산더 플레밍(1881~1955)은 정확히 96년 전인 1928년 9월 3일 여름휴가를 마치고 자신이 근무하는 영국의 세인트메리 병원 연구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의 눈에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목격됐다. 실험실 책상 위에 쌓아둔 포도상구균 배양접시에 휴가를 떠날 때는 없던 푸른곰팡이가 자라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곰팡이 주변의 포도상구균만 녹아서 죽어 있던 것이다.

 

훗날 알려진 이야기지만 이 푸른곰팡이는 곰팡이의 알레르기 치료법을 연구하던 다른 연구자의 아래층 실험실에서 바람을 타고 날아온 것으로 추정됐다.

 

‘20세기 인간이 만들어 낸 최고의 약품’인 항생제 페니실린이 탄생하게 되는 순간이다.

 

페니실린은 20세기 중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독감, 기관지염, 급성폐렴 등의 질병 치료에 효과적으로 쓰여 사망자를 크게 줄이는 데 기여한 최고의 항생물질이 되었고 항생제 연구의 시발점이 된다.

 

이러한 우연적 발견을 과학사에서는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고 한다. 과학과 의학의 발전에는 이런 우연적 요소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플레밍은 푸른곰팡이(Penicillium notatum)가 생성한 물질을 곰팡이 이름을 따서 페니실린이라 명명한 후 실험을 거듭한 끝에 페니실린이 여러 종류의 세균에 대해 항균작용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또 페니실린이 인간의 백혈구에는 전혀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점과 페니실린을 생쥐에 주사해도 거의 해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플레밍은 이듬해인 1929년 연구결과를 ‘영국 실험병리학회지’에 발표했다.

 

그러나 초창기의 페니실린은 너무 민감해 효력과 수명이 매우 짧았고 이 때문에 학계에서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10년도 더 흐른 1940년 옥스퍼드 대학교 연구자 에른스트 보리스 체인, 하워드 플로리가 페니실린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하다가 인공생성에 이어 정제하는 데까지 성공했다. 이후 임상시험 끝에 패혈증에 대한 효과를 검증하고 논문을 써내 세간의 관심과 지원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어 페니실린 대량생산은 제약사 화이자에서 공정에 성공한 마가렛 허친슨 루소의 업적이다. 페니실린은 플레밍이 발견한 것이지만 의약품으로 발전한 것은 여러 사람의 업적이다.

 

플레밍은 1945년 체인, 플로리와 함께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플레밍은 1955년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시신은 영국의 위인들이 안장된 세인트 폴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의학의 발전은 병원균인 미생물과의 싸움의 역사다. 미생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17세기 말 네덜란드 아마추어 과학자였던 안토니 판 레벤후크가 오늘날의 현미경 원형이라 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 관찰하면서 처음 알려졌다.

 

이후 몇몇 의학자에 의해 질병의 원인은 세균이라는 주장이 본격적으로 주장되었지만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그때만 해도 공기오염이나 불량한 생활환경, 또는 종교적 징벌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치료법 역시 수은, 사혈, 관장, 구토 등 외에 별 게 없었다.

 

1885년이 돼서야 프랑스 과학자 파스퇴르가 백신에 의한 질병 예방 원리를 알아냈다. 이후 19세기 말에서야 의학계의 노력으로 특정 질병은 특정 병원균 때문에 생긴다는 세균병인론이 확립됐다. 질병의 원인에 대한 기존의 생각이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제너가 천연두 백신을 만들어낸 이후 같은 원리를 이용하여 광견병 백신(1884년), 결핵백신(BCG, 1909년), 디프테리아백신(1921년), 파상풍 백신(1924년)등이 개발되었다.

 

하지만 백신은 치명적 단점이 있었다. 이미 몸 안으로 들어온 병원균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라는 것이었다. 질병의 원인이 되는 미생물을 억제하거나 죽이는 항생제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인류에게 기적 같은 선물을 안겨준 것이 바로 1928년 여름 페니실린의 발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