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의료

‘치매’ 용어 변경 이번 국회에서는?

지난 국회서 8건이나 발의...회기만료로 폐기
서명옥 의원 22대 국회서 첫 발의
“부정적 인식 개선 위해 반드시 용어 변경 필요”

한국헬스경제신문 김기석 기자 |

 

우리나라는 급속한 고령화로 치매 및 알츠하이머 환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 2023년 기준 약 98만 명이 치매와 알츠하이머를 앓는 것으로 추정된다. 65세 이상 노인의 10.4%로 어르신 열 명 중 한 명인 셈이다.

 

그런데 널리 쓰이는 ‘치매’라는 용어에는 사회적 편견과 모멸감, 부정적 인식이 깔려있다는 지적이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보건복지부가 2021년에 실시한 대국민 인식조사에서는 국민 43.8%가 치매 용어에 거부감을 보였고, 2021년 국립국어원의 조사결과 과반(50.8%)이 다른 용어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고 응답했다.

 

치매는 ‘어리석을 치(痴)’, ‘어리석을 매(呆)’라는 한자다. 치매라는 용어는 ‘dementia’(정신이상)라는 라틴어 의학용어의 어원을 반영해 ‘어리석다’란 의미의 한자로 옮긴 것이다. 이를 일본에서 전해 받고 해당 한자어를 우리 발음으로 읽어 지금까지 사용해왔다.

 

癡(치)는 ‘병들어 기낼 녁(疒)’과 ‘의심할 의(疑)’로 이뤄져 있다. 疒은 병들어 침상에 누워있는 사람을 그린 것이고, 疑는 지팡이를 짚고 길을 헤매는 노인을 형상화한 것이다. 呆는 강보에 싸인 어린아이나 기저귀를 차고 있는 모습을 나타낸 상형문자로 어린아이 수준으로 퇴행했음을 의미한다.

 

사회적 편견과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치매라는 용어를 다른 말로 바꾸자는 움직임은 2011년 이후 지속돼 왔다.

 

같은 한자 문화권인 대만은 2001년 실지증(失智症), 일본은 2004년 인지증(認知症), 홍콩과 중국은 각각 2010년과 2012년 뇌퇴화증(腦退化症)으로 변경해 사용하고 있다.

 

앞서 21대 국회에서는 치매 용어를 변경하자는 치매관리법 개정 법안이 8건이나 발의됐다. 그러나 토론과 심리가 이어지지 않았고 임기 만료로 모두 폐기됐다. 개정안에서 대체할 말로는 ‘인지저하증’ ‘인지흐림증’ ‘인지증’ 등 다양한 용어가 제시됐다. ‘치매안심센터’는 ‘인지건강센터’로 하자는 대안도 있었다.

 

2021년 두 차례 국민인식 조사에서는 ‘인지저하증’으로 변경하는 안이 가장 높은 선호도를 보였다.

 

22대 국회에 들어서는 서명옥 국민의힘 의원(보건복지위원회)이 최근 ‘인지증’으로 변경하는 치매관리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서명옥 의원은 “‘인지증’이라는 용어 사용을 통해 고위험군·초기증상자들이 센터·병원을 더 쉽게 방문할 수 있도록 심리적 문턱을 낮추겠다”며 “치매에 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돼 환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을 헤아리고 보듬어주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병명에 담긴 부정적 인식과 편견을 개선하려는 사례로, 2011년 ‘정신분열증’을 ‘조현병’으로, 2014년 ‘간질’을 ‘뇌전증’으로 바꾼 일이 있다.

 

정신분열증을 조현병으로 수정하기까지는 3년여의 시간이 걸려 국회 본회의에서 명칭 개정법률안이 통과했다. 간질 또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자 법제처 주도로 4년이 걸려 뇌전증으로 고쳐 부르기로 했다. 대한의사협회도 찬성했다.

 

그러나 치매 명칭 변경은 좀 다르다. 대한의사협회는 용어를 변경하면 사회적 혼란을 일으킬 것이 우려된다며 부정적 입장을 밝혀 왔다. 의협은 치매가 이미 진단명으로 활발히 사용되고 있고, 용어 변경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구축된 치매안심센터 등을 중심으로 인식개선 노력을 하는 게 타당하다는 입장이다.

 

일본, 중국, 홍콩, 대만이 이미 치매 용어를 다른 말로 대체했는데도 ‘간질’은 되고 ‘치매’는 안 된다는 식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 21대 국회 회기에서 8번이나 발의됐는데도 무관심으로 일관해 결국 회기만료로 폐기시킨 국회에 대해서도 비난하는 목소리도 크다.

 

치매 용어를 개정하길 원하는 치매 환자 가족들은 이번 국회에서는 꼭 논의가 진전돼 국민적 합의를 이뤄 치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길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