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젠더

인권위, “유산유도제 미프진 도입하라” 정부에 권고

9월 28일 ‘안전한 임신중지 국제행동의 날’ 맞아
“임신중지 의료 서비스에 건강보험 적용해라”
“‘낙태’ 대신 ‘임신중지’ 용어를 사용하라”
“낙태죄 헌법불합치 이후 정책 부재는 여성인권 침해”

한국헬스경제신문 김기석 기자 |
 

9월 28일은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위한 국제행동의 날’이다. 1990년 9월 28일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에서 낙태죄 처벌 폐지를 위한 시민행동이 일어난 날을 기념해 제정됐다. 2011년 ‘재생산권을 위한 여성 글로벌 네트워크(WFNRR)’가 이날을 국제기념일로 선포했다.

 

이날을 맞아 국가인권위원회가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 이후의 정책 부재가 여성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입법 공백으로 안전한 임신중지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보건복지부 장관과 식품의약품안전처장에게 미프진 등 임신중지 의약품을 도입해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하고 임신중지 관련 의료서비스에 건강보험을 적용할 것을 권고했다.

 

또 부정적 용어인 ‘낙태’ ‘중절’ 대신 ‘임신중지’ ‘임신중단’으로 정책용어를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앞서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권리보장을 위한 네트워크’ 김나영 대표는 인권위에 “낙태죄 효력이 없어졌음에도 일선 병원에서 모자보건법을 이유로 임신중지 관련 진료와 서비스 제공을 제한·거부하고, 진료비가 과도하게 책정되며 임신중지에 대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여성의 건강권이 침해되고 있다”고 진정을 제기했다.

 

아울러 “세계보건기구가 필수핵심 의약품으로 지정한 유산유도제인 미페프리스톤을 도입하지 않고 ‘허가 외 사용’으로 돼 있어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침해되고 있다”고 했다.

 

임신중지는 2019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입법공백 상태에 놓여있다. 헌재는 임신중지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수술을 한 의사와 여성을 처벌하도록 한 형법 제269조 제1항, 제270조 제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두 조항은 2021년 1월1일부로 효력을 잃었다.

 

그러나 이후로도 후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임신중지는 불법이 아니지만 안전한 임신중지를 보장할 법 체계가 마련되지 못한 상황이다.

 

인권위는 세계보건기구(WHO)가 필수의약품 목록에 등재한 유산유도제를 지난해 기준 96개 국이 도입했으나, 한국은 유산유도제가 도입되지 않아 수술적 방법에 의존하거나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의약품을 구매해야 하는 등 임신중지의 이용 가능성 및 접근 가능성이 제한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 보장 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작위로 인해 건강에 대한 권리를 포함해 자기결정권의 향유를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남성과 비교할 때 여성에게만 필요한 의료 개입을 거부하거나 방치하는 것이므로 성별을 이유로 평등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임신중지권은 여성의 자유권, 평등권, 사회권을 포괄하는 권리”라며 “국가는 이를 보장하기 위해 적절한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보건복지부 장관은 인권위에 “임신중지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의료체계 수립, 의약품 사용 등은 형법 및 모자보건법의 개정이 선행돼야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장도 “유산유도제 허용을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어 형법 및 모자보건법 개정이 선행돼야 가능하다”고 답했다. 유산유도제 품목 허가와 관련해 일부 제약회사가 수입허가 신청을 한 건에 대해서는 안전성·유효성 및 품질자료 등을 심사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