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 논란이 된 ‘비동의간음죄’, 뭐가 문제인가

강간죄 요건인 ‘폭행·협박’에 ‘동의 여부’ 포함
찬성론, “물리적 행사가 아닌 성폭행도 많다”
반대론, “억울한 피해자 양산한다”
지난 정부도 추진, 국회서도 발의됐으나 무산돼

한국헬스경제신문 한기봉 선임기자 |

 

▶지난해 7월 25일 여성단체 회원들이 국회 본관 계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비동의강간죄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강간죄개정을위한연대회의 제공)

 

성범죄에서 가장 흉악한 범죄는 ‘강간’이다. 강간죄는 형법 297조에 이렇게 규정돼 있다.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1953년 형법이 제정될 때부터 바뀌지 않았다. 그럼 폭행과 협박은 어느 정도여야 하는가. 대법원 판례는 이렇다.

 

‘피해자의 항거를 불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것이어야 한다. 그 여부는 폭행 및 협박의 내용과 정도는 물론이고 유형력을 행사하게 된 경위,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 당시의 정황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해 판단하여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4·10 총선 10대 공약에 ‘비동의강간죄(간음죄) 도입’을 포함시켰다가 사흘 만인 27일 “실무적 착오였다”고 철회하면서 비동의강간죄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민주당이 입장을 바꾼 건 전날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비동의강간죄가 도입되면 억울한 사람이 양산될 수 있다”며 공격한 지 하루 만이다.

 

비동의강간죄는 강간죄 성립 요건을 ‘폭행 또는 협박’에서 ‘동의 여부’까지 확대하자는 것이다.

즉,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았다면 설사 물리적 행사가 없었다 해도 강간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강간죄는 피해자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실질적으로 보호하기에 부족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동안 여성계 및 성평등을 주장하는 단체들은 비동의강간죄를 도입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도 2018년 한국 정부에 비동의간음죄 도입을 권고한 바 있다. 적지 않은 선진국들은 비동의강간죄를 도입했다.

 

이같은 여론이 일자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2월 비동의 강간죄 신설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으나 법무부가 반대한다고 밝히자 발표 9시간 만에 철회한 적이 있다.

 

지난 박근혜, 문재인 정부에서도 비동의강간죄 입법을 추진했고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10건이나 관련 개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반대와 신중론도 만만치 않고 충분한 논의 없이 회기가 만료되면서 입법까지 이뤄지지 못한 상황이다.

 

◇“도입해야 한다”

 

여성단체들이 비동의강간죄 도입을 요구하는 이유는 ‘저항이 불가능할 정도’의 폭행·협박이 없는 상황에서도 다수의 강간 범죄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를 뒷받침한 조사가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9년 1~3월 전국 성폭력상담소협의회 소속 66개 상담소의 강간피해 상담 사례 1030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직접적 폭행·협박 없이 발생한 성폭력 피해 사례’는 71.4%(735건)나 됐다.

 

이런 경우가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피해자가 지적·사회적으로 판단 능력이 부족하거나, 술이나 약물에 취한 상태이거나, 수면 또는 가수면의 무방비 상태이거나, 저항하기 어려운 장애인이거나, 금전적으로 의존해 있는 경우, 상대방이 높은 권력의 위치에 있거나 인사권을 가진 경우, 소문이 날 우려가 짐작되는 경우, 거부하다가는 다칠 우려를 느낄 경우, 보복이 두려운 경우 등에서 이뤄지는 성관계다.

 

이런 상황이나 형편을 악용해 이뤄지는 성관계에서는 피해자가 거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국내 사례는 2018년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가 최종적으로 유죄 선고를 받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경우다. 이때 비동의간음죄가 거론됐다.

 

◇“도입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비동의강간죄 도입 반대론이나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반대론자들은 한동훈 위원장이 민주당의 공약을 공격하면서 말했듯이 “피해자가 내심으로 동의했는지 여부로 범죄 여부를 결정하게 되면 고발당한 사람이 동의가 있었단 것을 입증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한 위원장은 “원래 입증 책임이 검사에게 있는데 입증 책임이 혐의자에게 전환된다. 그랬을 경우 억울한 사람이 양산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어떤 목적에 의해서든 무고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이다.

 

반대론자나 신중론자들은 또 업무나 고용, 지위 등에서 위계·위력에 의한 성범죄는 이미 다른 법으로 처벌이 가능하고, 동의 여부에 대한 증거 수집이 현실적으로 어려우며, 피고인의 자기 방어권 보장이 침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든다.

 

또 내심 원치 않으면서도 거부 의사를 비치지 않고 참여한 성행위가 성적자기결정권 침해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윤리적 문제는 되더라도 형사법상의 범죄 행위로 봐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밖에도 단순한 동의 여부가 성폭력 범죄의 기준이 된다면 국가가 지나치게 개인의 사생활에 간섭하며 과잉형벌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비동의강간죄는 젠더갈등을 확산하기도 한다. 젊은 남성들이 많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비동의 강간죄가 도입되면 이를 악용하는 여성들 때문에 무고한 남성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주장이 확산하고 있다.

 

◇비동의간음죄는 ‘Yes means Yes’ rule

 

비동의강간죄와 관련해 등장한 용어가 ‘No means No’ 룰(rule), ‘Yes means Yes’ 룰이다.

 

‘No means No’ 룰은 강압이나 폭력이 수반되지 않았더라도 피해자가 거절 의사를 표현했다면 성폭력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Yes means Yes’ 룰은 한 걸음 더 엄격하게 보는 것으로 비동의강간죄의 이론 배경이 된다. 피해자가 ‘No’라고 말하지 않았다 해도 적극적인 ‘Yes’ 표시가 없었다면 성폭력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No means No’ 룰에서는 성폭력 분쟁이 일어났을 때 피해자가 거절 의사를 표현했음을 증명해야 피해를 인정받을 수 있다.

 

반면 ‘Yes means Yes’ 룰에서는 반대로 가해자가 피해자의 적극적인 승낙의 표현이 있었음을 증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