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HPV 백신, 남성 무료 접종 시급하다

자궁경부암 주원인 인유두종바이러스
HPV로 인한 남성 두경부암 발생 늘어
정부, 남성 청소년 무료접종 방침만 세워

한국헬스경제신문 한기봉 기자 |
 

HPV라고 불리는 인유두종바이러스(Human Papilloma Virus)가 자궁경부암의 주원인이라는 건 대다수 여성들이 알고 있다. 자궁경부암은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발병률이 높은 암이다.

 

하지만 이제는 남성들도 HPV에서 자유롭지가 않다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HPV가 두경부암, 음경암, 항문암 등을 일으킨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HPV가 남녀 모두에게 암을 유발하는 요인인 것이다.

 

HPV는 200종이 넘는데 이 가운데 40여 종이 성 접촉으로 전염된다. 성생활을 하는 남녀라면 누구나 감염될 가능성이 있다. HPV에 감염되면 자연히 없어지기도 하지만 1개월~수년간 잠복하고 있다가 갑자기 암을 유발한다.

 

이 때문에 HPV 예방백신을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이른 시일 내 무료 접종해야 한다는 주장이 의학계에서 점점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6년부터 만 12세 여성 청소년을 시작으로 현재 12∼17세 여성 청소년과 18∼26세 저소득층 여성에게 무료로 HPV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남성 청소년에게 백신을 지원하는 것은 비용 효과성이 떨어진다며 지원하지 않았다. 최근 남성 청소년에게도 적용한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아직 구체적 시행 계획은 발표되지 않고 있다.

 

◇HPV로 인한 두경부암이 늘고 있다

 

원로배우 민욱은 2015년 두경부암을 선고받고 2017년 눈을 감았다. 젊은 배우 남자 배우 김우빈이 앓았던 비인두암도 두경부암의 일종이다.

▶두경부암 발생 부위. (온라인 커뮤니티)

 

두경부(頭頸部)암은 머리(頭)와 목(頸) 부근에 발생하는 암이다. 뇌 아래에서 가슴 윗부분 사이를 말한다. 구강, 코, 부비동, 안면, 후두, 인두, 침샘, 갑상선 등 머리와 목에 발생한 모든 종류의 악성종양을 말한다. 발생 위치에 따라 구강암, 후두암, 편도암, 인두암, 침샘암, 갑상선암, 부비동암 등으로 구분한다. 5년 생존률이 60% 내외지만 조기 발견하면 완치할 수 있다.

 

두경부암 중 잇몸이나 혀, 침샘에 발생하는 구강암은 가장 발병률이 높다. 입안의 궤양이나 부종, 반점이 반복되는 경우 진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 3~6주 정도 쉰 목소리가 지속되거나, 목에 이물감이 느껴지거나, 피가 섞인 가래가 나온다면 반드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

최근 30, 40대를 중심으로 남성 두경부암 환자가 늘고 있는데 HPV 감염이 원인으로 보인다. 구강성교(오럴 섹스)는 두경부암의 대표적 원인으로 지목된다. 음부와 입이 접촉하면 입속 점막에 HPV 감염이 일어날 수 있다.

 

국내 두경부암 환자는 2015년 1만 9856명에서 2019년 2만 3691명으로 4년 사이 약 20%가 증가했다. 50대 이상 환자가 90% 정도이고 남자가 여자의 네 배 이상 많다. 두경부암의 위험인자인 흡연과 음주의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남성도 HPV 백신을 접종하는 것이 현실적인 해결책이다. 여성이 백신을 접종했더라도 HPV를 주고받는 남성이 접종을 하지 않으면 예방 효과가 떨어진다.

 

지난해 열린 대한두경부외과학회에서도 국가가 조속히 남자 청소년에게도 HPV 예방백신을 접종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다. OECD 회원국 대부분이 남녀 모두에게 무료로 HPV 접종을 하는데 우리나라는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이다.

 

남성의 HPV 감염 위험은 여성보다 높은 걸로 알려져 있다. HPV에 대한 집단 면역을 달성하려면 60% 이상 예방접종을 해야 하는데 접종률은 아직 50% 미만이라고 한다.

 

불임 남성의 HPV 감염 비율이 17%인데 비해 그렇지 않은 남성은 7% 수준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HPV 백신 효과

 

▶HPV 백신인 가다실 접종. (온라인 커뮤니티)

 

백신을 맞으면 HPV로 인해 발생하는 질환을 90%까지 예방할 수 있다. 백신은 서바릭스·가다실·가다실9 등 세 가지가 나와 있다. 예방 가능한 HPV 유형(혈청)은 서바릭스가 2개, 가다실은 4개, 가다실9은 9개다.

 

국가가 무료접종을 시행하기 전까지는 남자 청소년은 병·의원에서 본인 부담으로 백신을 맞아야 한다. 가다실9은 14세 이하는 6개월 간격으로 2회 접종하며, 15~26세는 최초 접종일로부터 2개월 후 2차 접종, 6개월 후 3차 접종을 한다.

 

HPV백신은 예방에 효과가 있지만, 이미 감염된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목적으로는 활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성생활을 시작하기 전 적절한 시기에 접종해야 한다.

 

◇남자 청소년 무료접종, 방침만 있다

 

정부는 12~18세 남자 청소년에게도 무료로 HPV 백신을 접종하겠다는 방침이다.

 

지난 1월 질병관리청은 ‘국가예방접종 도입 우선순위 설정 및 중장기 계획 수립 연구 결과’ 발표에서 7개 감염병(대상포진, HPV, 인플루엔자, 폐렴구균, 파상풍·디프테리아·백일해, 수두, A형간염)을 우선 순위로 정했다.

 

특히 국정과제로 추진 중인 HPV 백신 대상 확대 및 고령층 대상포진 백신 도입의 경우 질병부담, 비용효과 측면에서 도입의 타당성이 인정됐다.

 

문제는 예산이다. 지난 1월 질병관리청이 예산 절감을 위해 2회 접종까지 지원하던 것을 남녀 모두 1회 접종으로 줄이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는데 의학계가 반대하자 철회했다.

 

정부는 남자 청소년 접종 시기를 아직 정하지 못하고 있다.

 

38개 OECD 회원국 중 HPV 백신을 1회만 지원하는 국가는 영국·호주 등 2개국에 불과하다. 미국·영국·호주 등 21개 회원국은 이미 남녀 모두에게 가다실9 무료 접종을 시행하고 있다. 집단면역 상태인 70~80%를 도달한 나라도 많아 2030년을 전후해 자궁경부암을 완전 퇴치하겠다는 것이다.

 

여성 청소년만 지원하는 나라는 한국과 멕시코,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등 6개 국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