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헬스경제신문 | 최정윤 서울대학교병원 약제부 소아조제파트장
약을 함부로 쪼개거나 부수면 안 되는 이유
약을 복용하다 보면 알약을 삼키기 힘들어 반으로 자르거나 부수어야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잦은 투약 등 복용의 불편함을 해소하거나 체내에서의 이용률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약물방출제어시스템을 적용한 약품들이 시판되고 있어서 무작정 자르거나 부수면 낭패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약제들에 적용된 특수 제형이 파괴되면 방출제어 효과가 소실되어 기대하는 시간 만큼 약효가 지속되지 못하기도하고, 약물 성분이 과도하게 방출되어 약물의 혈중 농도가 높아져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또한 자르거나 부서진 제형으로 침투한 위산에 의해 약물 성분이 파괴되어 약효가 줄어들 수 있다. 따라서 특수한 제형의 약품들은 씹거나 으깨 먹지 말아야 하고 분할해서도 안 된다. 물과 함께 제형 그대로 삼키는 것이 정확한 복용법이다.
■ 서서히 방출되는 제형
서방형 제제는 체내에서 약물이 서서히 방출되도록 제어하여 약효 지속 시간을 늘리므로 약물 복용 횟수를 줄이는 장점이 있다. 서방형 제제는 매트릭스 타입(matrix type)과 삼투압을 이용한 오로스(Osmotic controlled Release Oral delivery System, OROS) 제형 등이 있다.
매트릭스 타입은 분쇄 시에는 서방 효과가 사라지고, 분할 시에는 서방 효과가 감소할 수 있다. 일부 매트릭스 제형은 분할만 해도 서방 효과가 완전히 없어지기도 하므로 복용 전에 제품별 주의 사항을 확인해야 한다.
약품명에 CR(Controlled Release), SR(Slow Release), ER(Extended Release, XR이나 XL로 표기되기도 함), PR(Prolonged-Release), GR(Gastro Retentive) 등으로 표기된 제제들은 서방형 제제이므로 자르거나 부수지 않아야 한다. OROS 제형은 삼투압 원리를 이용해 약의 방출 속도를 조절하는 제형으로, 분할하면 서방 효과가 소실될 수 있으므로 주의한다.
약물의 붕해(고형 제제가 녹는 것) 시간을 지연시키는 단순 서방정 이외에 GRDS(Gastro Retentive Delivery system, 위 체류 시스템)를 이용한 약물은 복용한 후 일정 시간(12~24시간) 동안 위장에 머물면서 약물을 지속적으로 방출하여 소장 상부에서의 약물 흡수를 극대화시키므로 분할 또는 분쇄 시 서방 효과가 소실될 수 있다.
■ 소장에서 흡수되도록 설계된 제형
장용성 제제는 소장에서 이루어지는 약물 흡수를 개선하기 위하여 위산에 분해되지 않도록 정제 표면에 피막을 입혀 제제화한 제형이다. 따라서 장용정을 분쇄하는 경우 위장에서 약물 성분이 대부분 파괴되어, 장에서의 약물 흡수가 줄어들어 결과적으로 약효 감소를 초래하게 된다.
단, 장용 캡슐의 경우에는 주로 장용 제피된 과립을 캡슐에 충진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과립을 분쇄하지 않으면 장용 효과는 유지된다. 약품명에 장용 코팅(enteric coated)으로 표기된 약품들 이 장용정에 해당한다.
■ 습기를 흡수하는 약품
자르거나 부수면 안 되는 약물 중에는 습기에 약한 약도 포함된다. 이러한 약제를 자르거나 부수게 되면 공기 중의 습기를 빨아들여 약이 변질되거나 약효 감소를 초래할 수 있다.
흡습성이 강한 약제는 일반적으로 병 포장보다는 PTP(Press Through Package, 알루미늄 재질 포장) 등 습기를 차단할 수 있는 개별 포장으로 공급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제제는 미리 포장을 제거하지 말고, 복용 직전에 PTP 포장을 개봉하여 복용할 것을 권장한다.
■ 알약 복용이 어려운 환자에게 추천되는 제형
최근에는 분쇄할 필요가 없도록 개선된 제형도 많이 출시되고 있다. 물 없이 복용이 가능한 구강붕해정이나 물에 녹여서 복용이 가능한 확산정 또는 현탁정 등이 있다. 이러한 약제들은 알약을 복용하기 어려운 환자에게 사용이 추천된다.
특히 어린이는 알약을 삼키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므로 동일한 성분의 시럽 제형이 있다면 정제를 부수어 복용하는 것보다는 시럽제나 과립 제를 우선적으로 고려해 볼 수 있다.
■ 자르거나 부수면 부작용이 심해지는 약품
약물 부작용 때문에 분할 또는 분쇄 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약제도 있다. 대표적으로 골다공증에 사용되는 비스포스포네이트(bisphosphonate) 계열 약제 (alendronate, risedronate 등)는 구강인두의 궤양화 가능성 때문에 씹거나 빨아 먹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자르거나 부수게 되면 이 계열 약제에서 자주 나타나는 부작용인 식도염의 위험성이 증가한 다. 따라서 가능하면 1컵 이상의 물과 함께 알약을 통째로 삼키 는 것을 권고하며, 최소한 약을 복용 한 후 30분간은 눕지 않아야 한다.
* 이 기고는 대한보건협회 <더행복한 건강생활>과 함께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