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젠더

[파리 올림픽] “여성 선수의 신체를 부각하지 마라”

IOC 주관 방송, “성차별적 촬영과 편집 금지”
‘성평등 올림픽’ 위한 다양한 노력들
남녀 도우미 모두 바지 차림 동일 복장
폐회식 마지막 경기는 여성 마라톤

한국헬스경제신문 김기석 기자 |

 

근대올림픽을 창설한 쿠베르탱 남작은 “여성이 스포츠에 참여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며, 재미있지도 않고, 여성의 건강과 정숙함을 해칠 수 있다”며 “올림픽에서 여성의 역할은 우승자에게 월계관을 씌어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모든 종목에 여성 선수가 출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규정은 1991년에 비로소 생겼다.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일어난 중요한 변화는 ‘성평등 올림픽’이다. 1만 500명 선수의 남녀 비율은 정확히 50 대 50으로 정해져 첫 남녀 동수 올림픽이 됐다.

 

다양한 인종의 여성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경기를 펼치는 모습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고 있다. 그런데 유독 여자 선수에 대해서는 경기 장면 외에도 얼굴과 몸매, 유니폼 등 특정 부위를 클로즈업하는 촬영과 편집 관습이 성차별적 관점에서 자주 지적돼 왔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주관 방송사인 올림픽방송서비스(OBS)가 파리 올림픽 촬영진에게 여성 선수를 남성 선수와 같은 방식으로 촬영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여성 선수의 신체 부위를 부각하는 성차별적 시선이 중계에 담기지 않게 주의하라는 것이다. OBS는 중계권을 산 전 세계 방송사에 올림픽 표준 방송을 제공한다.

 

야니스 엑사르코스 OBS 최고경영자(CEO)는 7월 28일 촬영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안타깝게도 일부 경기에서 카메라 촬영진이 남성 선수와 여성 선수를 다른 방식으로 화면에 담아 여전히 여성 선수들을 향한 고정관념과 성차별이 남아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자 선수들이 좀 더 매력적이거나 섹시해서 올림픽에 와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엘리트 운동선수로서 그 자리에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IOC의 ‘성평등 올림픽’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IOC는 성비 균형을 이룬 것 외에도 여성 출전 종목과 혼성 종목을 늘렸다. 32종목 중 28종목이 모두 남녀 출전 선수가 같다. 레슬링(남 192명·여 96명)과 축구(남 288명·여 216명)는 남자 선수가 많고, 체조(남 112명·여 206명)와 수영(남 648명·여 722명)은 여자 선수가 더 많다.

 

또 폐회식 날 마지막 경기로 남성 마라톤을 채택해 온 관습을 깨고 여성 마라토너들이 스타디움에 들어오게 했다. 남자 마라톤은 전날 열린다.

 

TV 황금시간대에는 여성 출전 종목을 더 많이 중계하도록 했다.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선수촌에 어린이집과 수유실도 생겼다.

 

시상식의 도우미 유니폼도 크게 바뀌었다. 올림픽 도우미는 아름답고 젊은 여성의 몫이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자격 요건에 ‘혈색이 좋고 반짝이는 피부’, ‘볼륨 있지만 뚱뚱하지 않은 몸매’ 등 외모 규정을 넣어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파리 올림픽 도우미는 남성을 포함시키고 남녀 모두 바지와 셔츠, 모자 차림의 동일한 복장을 착용하게 했다. 파리 올림픽 최대 후원사인 LVMH(루이비통) 그룹이 디자인했다.

 

이런 성평등 정신을 반영하듯 여자 선수들에게 성차별 발언을 한 스포츠 해설자가 곧바로 자리에서 해고되는 일도 벌어졌다. 유럽지역을 중심으로 한 스포츠 전문 채널 유로스포츠의 해설자 밥 발라드는 7월 27일 열린 여자 수영 400m 자유형 계주에서 금메달을 딴 호주 대표팀을 향해 “여자 선수들이 방금 경기를 마쳤네요. 여자들이 어떤지 아시죠? 화장하느라고 꾸물거리겠죠”라고 말했다. 화장 때문에 시상식이 지연될 것이라고 비꼰 것이다.

 

발라드의 발언은 성차별적이라는 비판이 쏟아지자 유로스포츠는 그를 즉각 방송에서 퇴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