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헬스경제신문 | 정희원 아산병원 노년내과 임상조교수
어느덧 연말이 가까워졌다. 이런저런 이유로 미뤄 둔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마음이 조급해졌는가? 당신 또는 부모님 등 주변 사람이 75세 이상이면서 곧 건강검진을 받을 예정이라면 이 글을 끝까지 읽기를 권한다.
암 검진 받아야 할까
최윤정 국립암센터 교수는 “75세 이상이 받는 암 검진은 이득보다 위해가 더 크다.”라고 말한 바 있다.
왜 그럴까? 첫째, 암 진행 속도가 느리다. 둘째, 암 발견 후 수술 등 항암 치료를 버틸 수 있을 만큼 체력이 뒷받침되는 경우가 드물다. 셋째, 검진이 암을 잡아내지 못할 수 있다. 넷째, 검진으로 인해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이 네 가지를 근거로, 검진이 의미가 없거나 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득보다 위해가 더 크다고 말한 것이다. 암 검진으로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사례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내시경으로 검사를 할 때 흔히 의식하진정, 즉 수면마취를 시행하게 되는데, 기저질환이 있는 노년층은 호흡 곤란이나 의식 저하가 생길 수 있고 최악의 경우 심정지가 올 수도 있다.
검사를 할 때도 장기에 구멍이 뚫리거나(천공) 감염될 가능성이 있다. 장기 내벽도 노화를 겪기 때문이다. 16년간(2004~2020년) 이루 어진 대장 내시경검사 6만여 건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23건의 천공이 발생하였고 이 결과 80대 노인 2명이 숨졌다고 한다.
선별검사의 의미가 떨어진다
75세 이상 고령층에 시행하는 검진이 효과가 없는 경우로 선별검사도 들 수 있다. 선별검사는 병을 확진하는 것이 아닌 의심이 가는 것을 걸러 내는 검사를 뜻하는데, 건강검진에서 암을 찾는 것은 대부분 선별검사에 해당한다.
선별검사를 통해 조금이라도 일찍 암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생존율과 삶의 질의 개선이 있는 경우에 검진에 의미가 있다. 문제는 선별검사의 결과가 완벽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선별검사에서 의심 소견이 보이는 경우 해당 부위를 바늘로 찔러 조직검사를 하는데, 이 경우에 검사의 합병증을 감수하더라도 실제로 암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유방암의 경우에 선별검사에서 의심 소견이 있는 경우 조직검사에서 실제 암세포가 발견되는 경 우는 10% 정도에 불과하다.
CT검사도 위험할 수 있다. 미국 국가폐암검진연구(NLST) 연구에 따르면 검진을 받은 2500명 중 1명은 방사선 피폭으로 암 사망 위험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한국 췌장암 진료 가이드라인에서도 방사선 노출, 조영제 부작용 등을 들어 췌장암 선별검사로 CT검사를 권고하지 않음을 명시한 바 있다.
이렇듯 75세 이상의 암 검진은 신중할 필요가 있으나 그 수는 증가 추세에 있다. 2022년 국가 암 검진을 받은 75세 이상 노인은 111만 7175명이다. 4년 전인 2018년에는 약 92만 명이 받았다.
이유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 연령 제한을 두지 않는 국가 암 무료 검진 제도(유방·폐·위·대장·간·자궁), 부모님께 암 검진해 드리는 것을 효도로 생각하는 문화, 제도와 문화를 악용하 는 몇몇 의료 기관들.
그래도 암 검진을 받고 싶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우선 암 검진의 유효성을 현실에 맞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치료나 수술이 아닌 단순 검진이므로 인체에 아무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라는 오해, 암 검진을 받아야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 그리고 여기에 더해 부모에게 효를 다한다는 착각이 현재 암 검진 문화는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나아가, 암 검진을 통해 발견된 암을 수술, 항암화학요법, 방사선 치료 등의 방법으로 치료하는 경우에, 이미 여러 가지 질병과 노쇠가 있는 경우라면 합병증이나 기능 저하로 치료를 중단하게 되거나,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도 있어, 노년기에는 치료를 시작하는 것만 못한 경우도 존재하게 된다.
먼저 병원을 찾아 자신의 기능 상태, 노쇠 정도 등을 측정해 보자. 다음으로 자신, 다음으로 배우자와 자녀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과 의논하자. 내가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즉 원하는 것 이 무엇인가? 검진을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 만약 검진을 받은 결과 암 판정이 나면 치료를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
받기로 한 경우 어느 선까지 받을 것인가? 장기별로는 다음의 기준을 적용하여 검진을 받는 것을 권한다. 유방의 경우는 40~69세까지 2년 간격으로 유방 촬영을 시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70세 이상의 경우 사례별로 따져서 시행한다.
무증상이라면 유방 촬영이 유방암 사망률을 낮춘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받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증상이 있거나 고위험군이라면 의사의 판단에 따라 유방 진찰, 초음파 등의 추가 조치를 받 는다. 폐는 55~74세의 고위험군만 저선량으로 흉부 CT를 시행하는 것이 좋고,
위암 검진은 40~74세는 2년 간격으로 시행하는 것이 좋다. 2년마다 위내시경(실시하기 어려운 경우는 조영검사)을 시행할 경우 조기에 발견할 확률이 높다. 조기 위암은 완치 가능성이 높고, 사망률도 50% 이상 낮아진다.
직계 가족이 50세 이전에 위암 진단을 받았거나, 자신이 만성 위축성 위염, 장상피화생 등 고위험군이라면 주치의와 상의해 2년 주기보다 더 짧은 간격으 로 검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75~84세는 근거 불충분, 즉 ‘굳이 할 필요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장암은 45~80세, 1~2년 간격으로 분변잠혈검사를 시행하는 것이 좋다. 매년 시행할 경우 대장암 조기 발견율을 86% 증가시키고, 이후 의학적 조치를 취하면 사망률을 14%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잠혈반응이 있거나, 개인별 위험도에 따라 대장 내시경을 시행한다.
80세 이상은 검사를 시행하여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근거가 불충분하다. 경제적 상황 등을 고려해서, 국내에서는 분별잠혈검사 대신 5~10년 간격으로 대장내시경을 시행해 볼 수도 있고, 이때 용종 등이 발견되는 경우에는 담당 의사의 조언에 따라 추적 검사 기간을 결정하게 된다.
자궁경부암은 20~74세 여성은 2년마다 세포검사를 받을 것을 권고하며, 인유두종 바이러스 단독 검사는 이득과 위해를 비교 평가할 만한 근거가 불충분하다. 또한 최근 10년 이내에 자궁경 부암 검진에서 연속 3번 이상 음성으로 확인된 경우 75세 이상에서는 권고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75세 이상 암 검진의 허와 실에 대해 알아보았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There is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 는 말이 있다. 대가를 치르지 않고 무엇인가를 얻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75세 이상 암 검진의 핵심을 꿰뚫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돈을 내고서라도 점심을 먹고 싶다면 그렇게 하시라. 그런데 과연 점심을 먹을 필요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 이 기고는 대한보건협회 <더행복한 건강생활>과 함께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