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헬스경제신문 윤해영 기자 |
‘파일럿’ 김한결 감독, ‘시민덕희’ 박영주 감독, ‘그녀가 죽었다’ 김세휘 감독, ‘대도시의 사랑법’ 이언희 감독, ‘유미의 세포들 더 무비’ 김다희 감독.
침체된 한국 영화계에서 지난해는 여성 감독들의 활약이 돋보인 해였다.
이와 함께 지난해 한국 영화 흥행작 10편 중 6편 꼴로 영화의 성평등 기준인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핵심 창작 인력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도 높아졌다.
영화진흥위원회가 7일 발표한 ‘2024년 한국영화 성인지 결산’에 따르면 개봉작 182편을 분석한 결과, 여성 핵심 창작 인력은 △감독 48명(24.0%) △제작자 90명(25.6%) △프로듀서 85명(35.0%) △주연 91명(48.1%) △각본가 75명(34.7%) △촬영감독 20명(8.9%)이다. 2023년과 비교해 모든 직종에서 여성 인력의 비율이 크게 증가했다.
순제작비 30억 원 이상 상업영화 37편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에서도 감독, 제작자, 각본가 직종에서 여성 인력의 비율과 빈도가 늘어났다. 이 중 여성 감독 영화가 5편 포함됐다.
5편 작품 가운데 애니메이션 작품인 ‘유미의 세포들 더 무비’를 제외하고는 ‘파일럿’(4위), ‘시민덕희’(10위), ‘그녀가 죽었다’(13위), ‘대도시의 사랑법’(17위) 모두 관객 수 기준 한국영화 흥행 순위 30위권에 올랐다.

영진위는 “여성 감독의 중급 한국영화들이 2024년 영화산업의 새로운 성공 사례를 만들며, 상업영화에서 여성 창작자들의 입지가 확대될 가능성을 보여줬다”라고 평가했다.
영화 내용의 성인지 측면에서도 진전이 있었다. 작년 한국 영화 흥행 상위 30위에 오른 27편 중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는 16편으로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17년 이후 가장 높은 59.3%를 기록했다.
영진위는 한국 영화산업의 성별 균형 정도를 파악하고 추이를 살펴보기 위해 성인지 통계 보고서를 매년 작성하고 있다.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대표적 작품은 ‘파묘’, ‘파일럿’, ‘히든페이스’, ‘시민덕희’ 등이다.
벡델 테스트(Bechdel test)란 영화산업에 있어서의 성 차별, 특히나 여성 출연자와 대사 등이 남성에 비해 적게 나타나는 현상을 지적하기 위해 고안된 테스트다. 1985년 미국 만화가 앨리슨 벡델의 ‘경계해야 할 레즈비언’(Dykes to watch out for)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한 최소 요건은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가 최소 2명 이상’ ‘여성끼리 서로 이야기를 나눌 것’ ‘남성에 대한 것 이외에 다른 대화를 나눌 것’ 등이다.
하지만 여성 캐릭터의 복합성을 점검하는 스테레오타입 테스트에서는 조사대상작의 44.4%가 정형화된 여성 캐릭터를 그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양적 증가와 별개로 여성 캐릭터의 묘사에는 여전히 단편적인 경향이 있었다.
독립·예술영화 분야에서도 여성 감독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이미랑 감독의 ‘딸에 대하여’, 임선애 감독의 ‘세기말의 사랑’, 남궁선 감독의 ‘힘을 낼 시간’, 정지혜 감독의 ‘정순’, 김다민 감독의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등이 주목받았다. 정다운 감독의 다큐 ‘땅에 쓰는 시’는 관객 약 2만 3천 명을 동원, 2024년 여성 감독 독립영화 중 최고 관객 수를 기록했다. 양지혜 감독의 ‘괜찮아, 앨리스’도 관객 약 2만 1천 명을 모았다.
감독과 각본가의 성별이 주연 캐릭터의 성별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도 주목할 만하다. 여성 감독이 작품을 연출할 경우 여성 주연을 기용할 확률이 76.9%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여성 각본가가 각본을 쓰면 여성 주연 캐릭터가 등장할 확률도 75.6%로 높았다.
영진위는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며 퇴보한 양상을 이어오던 한국 영화산업의 성별 균형, 성평등 및 다양성 관련 지표들이 지난해 전반적으로 개선됐다”면서도 “정형화된 여성 캐릭터가 꾸준히 등장하는 흐름은 성별 균형 및 성평등을 위한 관심과 노력이 지속돼야 하고, 불평등 구조에 대한 더 세밀한 관찰과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준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