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헬스경제신문 |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임상조교수
얼마 전에 술병에 붙어 있는 ‘과음 경고 문구’를 ‘음주 경고 문구’ 로 개정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과음뿐 아니라 ‘음주’ 자체가 경고 대상인 것이다.
술, 치매 생기는 독을 먹는 것
사람들은 과도한 음주를 간의 문제에만 관련짓곤 했다. 하지만 술을 마시면 음주로 인한 영향이 우리 몸에 제일 먼저 나타나는 곳은 뇌이다. 술은 뇌에 어떻게 나쁜가? 뇌 앞쪽 부분을 전두엽이라고 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행동하도록 하는 곳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옳지 않은 일을 자제하게 만든다. 술은 전두엽의 기능을 저하한다.
저하하는 곳은 또 있다. 해마다. 해마 모양을 닮아 그런 이름이 붙었는데 장기 기억을 담당한다. 해마 기능이 저화되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쉬이 잊게 된다. 그것이 아무리 중요한 일일지라도. 전 두엽과 해마가 망가지면 중증 치매와 비슷한 상태가 된다.
복잡한 사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충동 조절 기능도 떨어진다. 별일 아닌데도 화를 내고, 앞뒤가 맞지 않는 의사결정을 한다. 이상한 일이다. 아무리 많은 돈을 준대도 치매 걸리는 독을 먹 을 사람은 없을 텐데, 돈을 내고서도 독이나 다름없는 술을 마시는 사람은 널렸으니.
과거에는 오랜 기간 과도하게 음주를 해야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은 차마 마주하기 힘든 진실을 직면하게 한다. 최신 영상 분석 기술을 통해 알코올 섭취가 뇌, 특 히 전두엽과 해마의 가속노화를 유발한다는 것이 알려졌다.
우리는 명실상부하게 술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2021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40대 남성의 27.9%가 고위험 음주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고위험 음주는 1회 평균 음주량이 7잔 이상이며 주 2회 이상 음주하는 것인데, 서구의 중등도 음주 기준인 1회 3잔보다도 훨씬 높다.
이렇게 술을 마시다가는 60대가 되면 뇌 나이가 12살이나 많게 된다. 음주가 유발하는 문제 중 악질인 것을 하나 꼽자면 수면 질 저하다. 술을 마시고 오래 잠들더라도 왠지 모를 피곤함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잠이 오게 할 목적으로 술을 마신다는 사람이 있다.
잠이 올 수는 있으나 좋은 잠은 아니다. 알코올은 수면 구조를 바꾸기 때문이다. 깊이 잠드는 시간을 줄이고 렘수면의 패턴을 교란한다. 아무리 잠을 많이 자도 못 잔 상태나 다름없게 된다.
다른 하나는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높인다는 것이다. 겨울철에 심혈관 질환의 발생 위험이 증가하는데, 술이 들어가면 배가된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분비를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술을 어떻게 끊을 것인가
심란하시리라. 가벼운 마음으로 잡지를 펼쳐 들었는데, 문장 문장마다 살벌하니. 사실 인간이 술을 선호하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우리 조상들은 자연 발효된 과일에서 나오는 알 코올을 고품질 에너지원으로 여겼다.
도수가 약 1% 정도에 불과 하긴 했지만. 조상들은 후손들이 도수를 몇십 배나 높여 마실 줄은 몰랐을 것이다. 새해를 맞아 술을 끊을, 혹은 줄일 결심을 한다면 ‘술이 없는 [without alcohol] 1월’이라는 뜻의 드라이 재뉴어리(Dry January) 캠페인을 참고할 만하다. 건강 챌린지의 일종으로 1월 한 달 동안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것이다.
2013년 영국의 한 자선단체에서 시작해 이제는 전 세계인이 참여하는 건강 캠페인이 되었다. 이 캠페인의 목표는 음주 습관을 돌아보고 다시 설정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신체와 정신 건강을 개 선할 수 있다. 절약은 덤이다. 1월로 정한 것이 절묘하다.
세밑 모임이 많은 12월을 지나 새해 다짐과 함께 시작하기 좋다. 익명의 알코올중독자들(Alcoholics Anonymous, AA)에 나가 보는 것도 권할 만하다. 알코올 중독 회복을 위한 자조 모임이다. 1935년 미국에서 시작했으며 현재는 전 세계에서 운영하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도. 알코올 중독에 대한 비난 없이 당사자 간 지지와 소속감을 제공하는 것이 큰 장점이다.
중독에서 회복하는 것은 긴 여정이라 믿을 만한 길동무가 필요할 터다. 단 특정 종교의 영적 요소를 강조하므로 종교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아무리 술을 좋아하기로서니, 알코올 중독 이야기까지 들어야 하나?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중독 상태임을 알고 있는 중독자는 드물다.
사람은 숫자보다 이야기에 약하다. 항공 사고 가능성이 아무리 낮아도 비행기 타기가 꺼려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연말이면 인사불성이 되어 길거리나 지하철 안에 쓰러져 있는 사람이 많다. 의사 입장에서 안타까운 생각도 들지만 술을 많이 마시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 주는 반면교사의 존재들이기도 하다. 그분들이 이 글을 꼭 읽어 보시길 바란다.
* 이 기고는 대한보건협회 <더행복한 건강생활>과 함께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