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헬스경제신문 | 정희원 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인지 예비능은 뇌 통장 잔액
모두가 두려워하는 병 ‘치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는 점이 치매의 가장 무서운 점이다. 안타깝게도 확실한 치매 치료제는 없지만, 예방은 가능하다. 바로 '인지 예비능' 기르기를 통해서이다. 인지 예비능은 뇌 인지 기능의 여유분이다.
이해하기 어렵다면 통장 잔액을 떠올려 보시라. 통장에 돈이 많은 사람은 큰 지출에도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생계에 위협을 받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평생 다양한 방법으로 몸과 머리를 사용해 인지 기능을 키우면 인지 예비능이 높아진다. 인지 예비능이 높은 사람은, 치매의 원인인 아밀로이드 병변이 쌓인 끝에 뇌가 쪼그라드는 상황이 오더라도 치매로까지 발전하지 않는다.
뇌를 어떻게 사용했는지와 치매 발병률이 관계가 있다는 것은 다수의 연구로도 입증된 바 있다. 미국 애리조나 대학의 로스 앤델 팀 연구에 따르면, 사람을 관리·상담하거나 고객을 접대하는 등 대인 업무에서 일하는 종사자나 정보를 수집하고 분류·분석하는 일을 하는 종사자는 낮은 수준의 인지 기능을 사용하는 직종의 사람에 비해 치매 발생률이 평균 22% 낮았다. 에밀리 로갈스키 교수는 70~80대에도 젊은이 못지않은 인지 기능을 가진 사람들을 연구했는데, 이들은 적극적으로 몸과 머리를 썼고 사회생활을 꾸준히 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인지 예비능 높이기
인지 예비능을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관련 연구를 종합해 보면, 복잡하고 정신적으로 부담이 되거나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활동을 꾸준히 수행했을 때 인지 기능이 높아졌다고 한다. 이러한 활동들로는 독서, 글쓰기, 서예, 그림 그리기, 악기 연주, 토론 등이 있다.
인지 예비능을 높이고자 할 때 주의할 점이 있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세 가지 균형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세 가지 균형에는 ‘동적인 활동과 정적인 활동의 균형’, ‘혼자 집중하는 활동과 사람과 상호 작용 하는 활동의 균형’, ‘수동적인 활동과 능동적인 활동의 균형’이 있다.
먼저 동적인 활동과 정적인 활동의 균형에서 사람들이 흔히 하는 오해가 있다. 뇌를 발달시키는 것과 신체 활동이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유산소 운동은 인지 기능 감퇴 속도를 늦추는 데 확실한 효과가 있다. 뇌에 산소를 공급하고 신체 기능을 개선하며 노화와 관련된 만성 질환을 개선하기 때문이다.
유산소 운동에는 걷기, 조깅, 수영, 자전거 타기 등이 있다. 유산소 운동을 하면 각성도를 높이는 호르몬인 도파민, 카테콜아민과 뇌 기능을 개선하는 물질인 뇌유래신경영양인자(BDNF, 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 등이 분비된다. 여기다가 흔히 머리 쓰기로 인식되는 활동인 독서, 글쓰기, 서예 등의 정적인 활동을 골고루 해주는 것이 첫 번째 균형을 달성하는 길이다.
두 번째 균형은 혼자 하는 활동과 여럿이 하는 활동의 균형이다. 혼자 하는 활동인 음악 감상, 퍼즐 맞추기 등은 집중력이 높아지는 등 뇌 기능 향상에 물론 도움이 된다. 여기에 대화, 토론 등 여럿이 하는 활동을 하면 사회적 관계 기술이 발달하고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는 능력이 길러진다.
세 번째 균형은 수동적 활동과 능동적 활동의 균형이다. 수동적 활동은 주로 자극을 받아들이는 활동으로 이해하면 된다. TV 시청, 음악 감상 등이 여기 속한다. 이러한 활동은 주어지는 자극을 받아들이므로 스트레스를 줄여 뇌를 편안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 반면 노래 부르기, 요리하기 등은 뇌를 능동적으로 쓰는 활동이다. 두 가지 활동을 골고루 해야 뇌 기능이 활성화된다.
치매를 예방하는 데 효과가 높은 인지 예비능을 기르기 위해서는 세 가지 균형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것은 나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활동만 하는 것보다 새로운 경험과 자극을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시도해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비슷한 일만 반복하게 된다. 그 틀을 깨시라.
* 이 기고는 대한보건협회 <더행복한 건강생활>과 함께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