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의료

‘안락사’ 옹호한 알랭 들롱 별세...국내외 안락사 논의는?

알랭 들롱, 안락사 여부 공개 안 돼
프랑스도 ‘적극적 안락사’ 추진 중
우리나라는 2018년 소극적 방식의 안락사 허용
국회에선 ‘조력존엄사’ 곧 발의될 전망

한국헬스경제신문 김기석 기자 |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다는 ‘세기의 미남’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이 18일 하늘로 떠났다. 세월은 질병을 비껴갈 수 없었다.

 

유족은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프랑스 자택에서 편안히 눈을 감았다”고만 발표했다. 알랭 들롱이 어떻게 사망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2019년 뇌졸중 진단을 받은 후 투병 생활을 계속해오던 그는 평소 안락사를 옹호했고 그렇게 떠나고 싶다고 말해왔다.

 

2021년 언론 인터뷰에서 “안락사는 가장 논리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우리는 병원이나 생명 유지 장치를 거치지 않고 조용히 세상을 떠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의 장남 앙토니는 2022년 “아버지가 나에게 안락사를 부탁했다”고 공개했다.

 

알랭 들롱은 적극적 안락사가 합법인 스위스 국적과 소극적 안락사만을 허용한 프랑스 국적을 다 갖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최근 적극적 안락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4월 엘리제궁 연설에서 “삶의 끝 선택권에 관한 프랑스 모델을 확립하기 위한 초안을 여름이 지나기 전까지 만들겠다”고 밝혔다.

 

프랑스는 2005년 ‘연명 치료 중단’ 방식의 소극적 안락사만을 도입했다. 이후 2016년 법을 개정해 말기 환자들이 죽음 직전 고통을 호소할 때 진정제 투약을 허락했고, 조력 존엄사나 적극적 안락사는 인정하지 않았다. 때문에 프랑스의 말기 환자들은 조력 존엄사가 허용된 스위스나 안락사가 특정 조건에서 허용되는 유럽 국가로 떠나 죽음을 맞이하곤 했다.

 

◇안락사 허용 국가와 안락사 형태

 

현재 유럽에서 적극적 안락사를 도입한 나라는 네덜란드와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페인, 포르투갈이다. 독일은 프랑스처럼 소극적 안락사를 허용한 나라다. 캐나다, 콜롬비아, 호주, 뉴질랜드 등도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한 나라다.

 

미국에서는 오리건 주와 버몬트 주를 비롯한 총 8개 주에서 엄격한 기준 하에 적극적 안락사를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안락사는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의사가 약물을 투약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적극적 안락사’와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 안락사’로 나뉜다. ‘조력 존엄사’는 환자가 의료진으로부터 약물이나 독약 등을 처방받은 뒤 자신의 의지로 복용해 삶을 마치는 방식으로 그 중간쯤 된다.

 

세계에서 안락사를 가장 관대하게 시행하는 스위스에선 지난달 ‘안락사 캡슐’의 상용화가 임박했다는 뉴스까지 나왔다.

 

보라색 캡슐에 들어가 뚜껑을 닫으면,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버튼을 누르면 사망하게 되는 걸 아는지 등의 질문을 받는다. 답변을 마친 뒤 환자 스스로 버튼을 누르면 산소량이 급감하고 질소가 투입되며 약 5분간 무의식 상태가 유지되다가 사망에 이른다. 산소를 대체하는 질소 비용, 18스위스프랑(약 2만8천원)만 내면 된다.

 

◇우리나라 존엄사법은?

 

우리나라에서는 2016년에 국회를 통과해 2018년 2월 4일부터 연명의료결정법(‘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 약칭 ‘존엄사법’)이 시행되고 있다.

 

이 법은 연명의료의 대상이 되는 질병(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 폐쇄성 호흡기질환, 만성 간경화, 그밖에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질환)을 가진 환자가 회생의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급격히 상태가 악화돼 사망에 임박한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 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환자의 심폐소생술·인공호흡기 등만 중단할 수 있다. 말기 환자나 식물인간 상태 환자는 해당되지 않으며 영양과 수분, 산소 공급 등도 끊을 수 없다.

 

죽음을 앞둔 환자가 자신이 더 살기 위한 치료를 계속할지 또는 중단할지에 관해 환자 스스로 또는 가족의 동의에 의해 선택할 수 있게 했다. 매우 엄격한 기준 하에서 임종 임박 환자에 한해 연명치료 연장 여부를 선택하게 함으로써, 안락사 영역에서는 가장 소극적 단계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국회에선 안락사에 적극적인 몇몇 의원들을 중심으로 조력존엄사를 허용하는 관련 입법안(2022년에는 발의됐으나 폐기)을 곧 발의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소극적 형태의 안락사 관련법의 단계를 지나, 죽음에 임박한 말기환자에 대해 약물투약 같은 방식의 자발적 조력존엄사를 허용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도 중요하지만 치료를 받을 여건이 안 되는 사회·경제적 약자의 선택을 부추긴다는 우려 또한 만만치 않다. 의료비에 대한 걱정으로 조력사망이 남용되지 않도록 안전망을 확충한 뒤 사회적 공론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우리나라는 올해 말이나 내년쯤 60세 이상 인구가 전체에 20%가 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현재까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쓴 국민은 250만 명에 달할 만큼 ‘삶의 존엄한 마무리’에 대한 관심 또한 매우 큰 편이다.

 

‘조력존엄사 법’이 발의되면 국내에서는 안락사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