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헬스경제신문 | 오주영 연세대 의과대학 정신과학교실.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
가상현실이 정신건강 치료에 어떻게 사용될까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 기술이 발전하면서 최근 정신건강의학과 영역에서도 가상현실 치료법이 활발히 개발되고 있고 실제로 이미 여러 질환 치료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불안장애 치료에서 가상현실 환경은 불안 상황을 실제 상황인 것처럼 재현한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해야 하는 상황, 터널, 지하철, 비행기 등 불안이 유발되는 특정 상황을 회피하거나 두려워하는 증상이 있다면 그 상황에 반복적, 점진적으로 노출시켜 해당 두려움에 대한 내성을 키울 수 있다.
국내에서는 사회불안장애와 공황장애 환자를 대상으로 한 가상현실 치료가 신의료기술로 공식 인정을 받기도 하였다. 다양한 정신건강 관련 질환에서 가상현실 기술을 접목하여 치료에 사용할 수 있는데, 특히 앞서 언급한 사회불안장애, 공황장애와 같은 불안장애 영역에서 많이 활용하고 있다. 불안을 유발하는 가상 환경에서의 인지행동치료, 노출 치료가 증상 호전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불안장애 외에도 우울증, 알코올 사용 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인지 기능 장애 등의 다른 정신건강의학과 영역에서도 많은 치료법이 이미 개발되고 있고 향후 사용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예를 들면 인지 기능 저하가 있는 노인은 일상생활에서 기본적인 과제 수행이나 길 찾기 등의 시공간 능력 등을 향상시키기 위한 인지 재활 치료가 필요할 수 있는데, 이때 가상현실 환경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스트레스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는 환자들에게는 스트레스 관리를 위한 마음챙김 훈련을 수행할 수 있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과 같은 가상현실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가능하다. 잘 구축된 가상 환경에서 환자들은 마음의 안정을 찾고 스트레스를 완화시킬 수 있다.
가상현실 치료의 장점
가상현실 치료의 장점 중 하나는 시공간 제약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행기를 타는 것을 무서워하고 이에 대한 공포증이 있는 사람의 경우 실제로 비행기를 여러 번 반복적으로 타 보는 노출 치료가 증상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가상현실이 아닌 실제 노출 치료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들 뿐 아니라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이동해야 하므로 시간적, 공간적 한계와 마주칠 수밖에 없다. 또, 비행기 내에서 공황 발작 등 급하게 대처가 필요한 증상이 나타나더라도 단시간에 비행기를 벗어날 수 없으므로 정신 건강증상이 심한 환자에게는 안전성 측면에서도 위험이 따른다. 반면 가상현실 치료의 경우 착용하고 있는 장비를 제거하면 해당 상황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으므로 더 안전하게 노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또 다른 장점은 표준화되고 통제된 환경에서 여러 번 반복적인 치료 수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치료의 일관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또한 환경을 의료진이 쉽게 조절할수 있으므로 환자 상태에 맞게 맞춤형 치료를 제공하기 수월하며, 치료 과정에서 획득한 생체 신호 등의 정보를 피드백하는 것도 용이할 수 있다. 치료의 특성상 원격 또는 재택에서 치료도 가능하므로 향후에는 환자들이 의료 기관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 치료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가상현실 치료의 효과와 전망
현재 많은 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에서는 약물 위주의 치료를 시행하고 있다. 노출 치료를 포함한 다양한 인지 행동 치료가 약물 치료 못지않게 좋은 치료 효과가 있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려졌으나 시간적 제약, 비용의 문제 등 현재 의료 환경에서의 여러 현실적인 한계 때문에 충분히 시행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가상현실 치료는 새로운 시대의 치료법으로 대두되고 있어 현실적인 제약들을 극복하고 정신건강 영역에서 보다 널리 사용될 것이다. 또한 기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으므로 기기 사용 중의 생체 신호를 측정하여 사용자에게 피드백을 주는 시스템이 보다 정교하게 발전할 것이며, 단순하고 일방적인 가상 환경 제공이 아니라, 가상현실 속에서의 상호작용도 지금보다 발전할 것으로 생각된다. 하드웨어적인 측면에서도 보다 가볍고 휴대성이 향상된, 더 많은 기능을 가진 장비가 계속해서 나올 것이 분명하므로 정신건강의학과 치료에서의 사용은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 이 기고는 대한보건협회 <더행복한 건강생활>과 함께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