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헬스경제신문 | 정희원 아산병원 노년내과 임상조교수
장수하는 비결이 있을까
장수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을까? 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장수마을 다섯 곳을 묶어블루존(Blue zone)이라 부른다. 이탈리아의 사르데냐, 일본의 오키나와, 코스타리카의 니코야, 그리스의 이카리아, 미국의 캘리포니아 로마 린다가 여기에 속하는데, 오지 탐험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댄 뷰트너가 소개해 유명해졌다.
지역들의 면면은 다양한데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탈리아 사르데냐는 인구 중 100세 이상 남성 비율이 높은 지역 중 한 곳으로, 주민 대다수는 목축업에 종사하며 하루 약 8km를 걷는다. 일본 오키나와는 1955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세계 최고의 장수촌으로 선정한 곳으로, 인구 1만 명 기준 100세 이상 노인이 5명 거주하는데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다음으로 그리스 이카리아섬은 중년 사망률과 치매 발병률이 낮다. 비슷하게 코스타리카 니코야는 중년 사망률이 낮고 100세 이상 인구가 많다. 미국 로마 린다는 조금 특이한데,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인들의 집단 거주지이다. 이들은 금연, 금주는 물론이고 채식 위주의 식사를 권장한다.
블루존은 지역 특성에서 비슷한 점이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인다. 유럽 2곳, 아시아 1곳, 북미 1곳, 남미 1곳 등 지리적 위치도 다르고, 인종이나 종교 등도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슷한 점이 아홉 가지나 있다. 이를 ‘파워 나인’이라고 하는데 다음과 같다.
파워나인
파워 나인은 크게 ‘식단’, ‘운동’, ‘마음가짐’, ‘관계’ 네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식단
식물성 식단 위주 섭취란 통곡물[현미 등 도정을 별로 하지 않아 쌀겨(호분층)가 남아 있는 곡물], 과채류, 견과류 등을 주로 먹고 고기, 가공식품 등은 적게 먹는 것을 뜻한다. 이 식품들에는 섬유질이 풍부한데, 섬유질은 소화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 때문에 섭취 후에도 혈당이 별로 오르지 않아 혈당 스파이크(짧은 시간에 혈당 상승과 하락이 일어나는 현상)가 예방된다. 혈당 스파이크는 한마디로 가속노화의 주범이라 할 수 있는데, 단기에는 식후 졸음과 브레인 포그(안개가 낀 것처럼 멍한 상태) 등을, 장기에는 내장 지방, 당뇨 등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단백질 섭취를 위해 꼭 고기를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콩류 등에도 단백질이 다량 들어 있다. 예를 들어 렌틸콩의 단백질함량은 건조 중량 기준 100g당 25g인데, 이는 닭가슴살(100g당 30g)과 소고기 안심(100g당 25g)에 견줄 만하다.
즉 고기로 단백질 섭취를 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을 깰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 약 13만 명의 건강한 성인을 30년에 걸쳐 관찰한 연구에 따르면, 동물성 단백질 섭취량이 많을수록 심혈관계 질환 관련 사망 위험률이 증가하는 반면, 식물성 단백질 섭취량이 많을수록 심혈관계 질환 사망 위험률은 물론 전체 사망 위험률도 감소한다고 한다.
소식도 중요한데, 배가 부르다고 느껴지는 식사량의 80% 정도만 먹는 것이다. 오키나와의 ‘하라하치부[腹八分]’가 잘 알려져 있는데, 배를 8부 정도만 채운다는 뜻으로 절제를 통해 건강을 지키는 방식이다. 여러 연구에서 소식이 저속노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식사처럼 술도 절제하는 것이 좋다. 와인 한두 잔 운운은 와인이 건강에 좋다는 게 아니라, 한두 잔 정도만 마셔야
한다는 뜻이다. 술은 주종을 막론하고 한 방울도 마시지 않는 것이 건강에 좋다.
•운동
일상 속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란 집안일, 농사일 등을 하면서 움직인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면 따로 운동하지 않고도 높은 신체 활동량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집에서도 쓸고 닦는 등 끊임없
이 무엇인가를 하는 분들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을 흔히 보았을 것이다.
•마음가짐
마음가짐에 따라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 스트레스는 장수의 적인데, 면역력에 악영향을 미치고 세포 노화, 심장 질환, 당뇨병, 암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목적의식을 가진다는 것은 곧 목적에 집중하고 그 외의 것은 내려놓는 것을 뜻하며, 마음 내려놓기를 통해 어떤 일이 생겨도 담담히 대처할 수 있다.
자신을 내려놓고 신 또는 진리를 따르는 신앙은 말할 것도 없다. 마음가짐에 따라 수명이 달라진다는 연구는 다수 존재한다. 미국 보스턴 의과대학 연구진이 의료계 여성 7만여 명과 군 생활 경
험이 있는 남성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남녀를 막론하고 낙천적인 사람이 평균 11~15% 더 오래 살고, 85세 이상 생존할 가능성도 크다고 한다. 연구 결과 낙천적인 사람들은 감정
조절에 능하여 스트레스에도 잘 견딘다고 한다.
•관계
사회적 관계도 장수에 중요하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외로움은 하루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만큼 몸에 해롭다. 흡연, 음주, 움직이지 않는 것, 비만, 대기 오염 등 이미 알려진 요소들만큼 건강에 해롭다는 것이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외로움은 우울증과 불안을 유발하고 심혈관계 질환 위험률을 30%까지 높일 수 있다. 노인은 사회적 고립 비율이 더 높으므로 주의할 필요가있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세계 노인 4명 중 1명이 사회적 고립을 경험한다. 외로움은 노인 건강에 더 해로워서 치매와 뇌졸중, 관상동맥 질환 발병 위험을 높인다.
지금까지 세계의 장수마을 다섯 곳인 블루존과, 공통점이자 장수 요인으로 지목되는 파워 나인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거나, 별것 아니고 시시하다는 생각이 드는가?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을 한다. 진리는 사소한 것에 있으나 실천하는 것은 어렵다고. 하지만 그 실천이 당신의 삶을 바꾼다. 실천해 보시라. 건강하게 오래 살 것이다.
* 이 기고는 대한보건협회 <더행복한 건강생활>과 함께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