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헬스경제신문 | 오동진 영화평론가
우연히 보게 된 22분짜리 단편 <아내가 우울증에 걸렸어요>는 영화적으로 완성도가 꽤 높은 작품이다. 하나의 주제를 밀고 나가는 연출력이 나쁘지 않고 각각의 에피소드가 연결되는 이음새, 감정선의 일관성을 잘 유지하고 있다. 누가 만들었는지 알고 싶었고 누가 찍었는지 알고 싶었으나 오로지 보건복지부 제작이라는 것만 나온다. 다만 『소중한 사람을 위해 우울증을 공부합니다』를 쓴 최의종 씨의 실제 경험을 영화로 만든 것이라고 나와 있다.
우울증은 심리 박약 때문에 걸리는 것이 아니다. 특히 노력이나 의지의 부족, 개인의 성격과 일상의 습관이 만들어 내는 감정 문제가 아니다. 우울증은 질병이다. 단편 <아내가 우울증에 걸렸어요>는 바로 그 점을 강조하지만 그걸 너무 내세우지 않는다. 보는 사람이 부드럽게 인식하도록 만든다. 그 톤앤매너가 좋다. 우울증 환자를 대할 때는 극히 조심해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우울증은 늘,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진다. 주변의 노력이 필요하고, 약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정기적인 상담이 필요하다. 영화에서 그 역할을 하는 사람은 윗집에서 손녀(로 보이는 아이)와 함께 옥상의 화초를 돌보는 여인이다. 놀랍게도 그 배우로 김금순(씨네필들에게는 <울산의 별>이, 대중들에게는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로 유명)이 나온다.
우울증의 원인은 생화학적인 것이다. 근인은 환경적인 것이고 드물게 유전적인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약물 치료가 기본이 되어야 하며 그 가운데 환경을 거듭 개선해 줘야 한다. 같이 산책도 하고 여행도 가야 하며, 요리나 화초 가꾸기 같은 것에 취미를 갖게 하기도 해야 한다. 힘들더라도 주변의 부단한 노력이 함께 경주돼야 한다. 그러려면 책 제목처럼 그 상대가 ‘소중한 사람’이어야 하며,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 영화의 남편에게 있어 아내는 그런 존재이다. 남편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전화로 말한다. 아마도 어머니는 아내의 성격을 탓하는 모양이다. “우울증은 병이에요. 그런 게 아니에요.” 남편은 아내를 위해 이사를 준비한다. 분위기를 바꿔 주려 한다. 그리고 아내에게 아이를 갖는 게 어떻겠느냐고 넌지시 권한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것 참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산후 우울증이란 큰 복병이 놓여 있어서 우울증 환자에게는 임신과 출산도 매우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는 문제이긴 하다.
『더 행복한 건강생활』의 독자 중에는, 누구도 본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영화가 있다. 2018년에 나온 일본 영화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아내가 죽은 척을 하고 있다>란 긴 제목의 작품이다. 감독이나 배우는 국내에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영화이다. 주인공 남편 준(야스다 켄)의 직장 동료 사노(오타니 료헤이)란 인물이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우리 영화 <명량>에서 우리 쪽 첩자로 활약하는 일군으로 나오는 그 배우이다.
<집에 돌아오면, 아내가 언제나 죽은 척을 하고 있다>의 아내 치에(에이쿠라 나나)는 기발한 여자이다. 남편이 돌아오면 가슴에 칼이 꽂혀 살해당한 척하고 있는 것부터 시작해, 어느 날은 악어의 입에 머리를 넣고 잡아먹힌 척을 하지 않나, 또 어느 날은 전투 중 사망한 군인이 되어 있지를 않나, 아니면 아예 이미 공동묘지의 귀신으로 변한 상태이기까지 하다.
남편 준은 처음엔 뒤로 넘어갈 만큼 기겁하고 놀라지만 점점 더 익숙해지고 나중엔 심드렁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준은 동료 사노에게 푸념을 늘어놓는다. 집에 가면 언제나 아내가 죽은 척을 하고 있어. 어떻게 해야 하지? 나중에 남편이 아내를 위해 선택하는 행동을 보면 박장대소와 함께 살짝 심쿵해진다.
영화 <집.돌.아.죽.>은 우울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대 사회의, ‘사연 많은’ 모두를 위한 웃음의
처방전 같은 영화이다. 모두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 우울증에는 이런 영화가 필요하다. 아니 우울증에는 영화 자체가 필요하다.
<집.돌.아.죽.>은 제목이 길기로 유명하고 어느 영화가 더 제목이 긴가를 내기하면서 한국 영화(이 영화 역시 『더 행복한 건강생활』 독자라면 전혀 알지 못하거나 심지어 싫어할 수도 있는 제목의 영화인데)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 살해 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2000)가 갑자기 소환되기도 한다. 하나는 20자, 또 하나는 27자. 만약에 <집.돌.아.죽>의 뒤를 ‘있다’가 아니라 ‘있습니다’의 경어체로 바꾼다 해도 22자에 머문다. 또 있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이다. 이건 26자이다. 우울증에는 이런 놀이 아닌 놀이도 치료제가 될 것이다.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 살해 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를 만든 남기웅 감독은 기인 중의 기인으로 꼽힌다. 이 영화는 공개 이듬해 캐나다 밴쿠버 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어쨌든 그런 공포영화보다는 <아내가 우울증에 걸렸어요>나 <집에 돌아오면, 아내가 언제나 죽은 척을 하고 있다> 같은 따뜻한 작품이 좋을 것이다.
당신이 지금 우울하다면, 주변에 우울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권하고 싶은 작품이다. 하나는 유튜브에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어느 OTT에 숨어 있다. 일본 영화는 원래 만화가 원작인 작품이다. 동명의 번역 만화도 찾아 보시기들 바란다.
* 이 기고는 대한보건협회 <더행복한 건강생활>과 함께 제공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