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헬스경제신문 | 박건우 고려대 안암병원 신경과 교수
지난 2월 17일은 음력설, 떡국을 먹고 나이도 한 살을 더했습니다. 세월이 참 빠르게 지나갑니다. 왜 나이가 들면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걸까요.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시간은 일정합니다. 1분은 60초이고 하루는 24시간이며 일 년은 365일이라는 정의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군대 시계는 왜 그리 더디 갔으며, 지금은 왜 이리도 휙휙 흘러가는 걸까요.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 다들 그리운 사람을 만나기 위해 기다려 보신 적이 있을 테지요. 기다림이 간절할수록 만남까지의 시간은 매우 더디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만남이 이루어진 후 시간은 너무도 빠르게 흘러갑니다. 인간이 정해 놓은 시간이라는 단위는 변함없이 일정한데 왜 누구는 빠르다고 말하고 누구는 느리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 프랑스 심리학자 장 마리 귀요는 1885년에 ‘시간의 속도를 결정하는 요소’를 분석하고 이를 정리해 놓았습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시간의 길이와 속도는 우리의 느낌과 생각의 강도, 생각의 횟수, 거기에 쏟는 관심, 기억에 그것들을 저장하는 데 드는 노력 그리고 그것들을 불러내는 감정과 연상에 의해 좌우된다고 합니다.
우리인간은 시간의 흐름을 객관적이 아니라 주관적으로 인식합니다. 즉 시간의 빠르기는 우리 의식의 과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간의 주관성과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은 기억입니다. 기억은 생물체가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발전시킨 인지 기능이지요. ‘사냥감이냐, 도망쳐야 할 대상이냐.’, ‘적이냐, 아군이냐.’, ‘먹을 수 있는 것이냐, 먹으면 해로운 것이냐.’, ‘이 길이 내가 가야 할 길이냐, 아니면 가지 말아야 할 길이냐.’ 등등 여러 선택은 결국 생존을 위한 기억과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를 학습하고 판단하고 또 기억합니다.
특히 성장 과정에 있는 유아기부터 청년기에는 다양한 생의 변곡점과 만나게 됩니다. 동생의 출생, 또래 친구들과의 교제,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과 헤어짐, 직업의 선택 등등 질풍노도와 같은 사건들이 파도처럼 밀어닥칩니다. 이 시기에는 하루하루가 너무도 소중하여 우리 기억의 축에 촘촘히 새겨져 있지요. 청년기를 되돌아보면 너무도 많은 것을 기억하도록 요구받습니다. 바쁘고 힘든 시기입니다. 하루하루의 일상이 빨리 지나갑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일주일, 한 달은 매우 더디 갑니다.
그러다 나이가 들고 안정이 되는 40대 이후가 되면 생에 권태가 찾아옵니다. 매일 반복되는 비슷한 일상, 아무 변화 없이 똑같은 직장 생활, 가족과의 관계, 친구와의 통상적인 만남…. 하나도 새로운 것이 없는 나날의 연속입니다. 이 시기에는 여유가 있어 하루가 길어 보여도 일주일, 한 달, 일 년 아니 오 년, 십 년이 휙 지나갑니다.
시간의 개인 이정표는 같은 시간의 축에 밀도가 다르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억을 촘촘히 해야 했던 시기였을 때는 이를 기록한 이정표의 밀도가 높습니다. 순간순간의 일들이 촘촘히 늘어서 있지요. 하지만 더 이상 새로운 기억이 잘 생성되지 않는 시기에 이르면, 기억의 이정표가 드문드문 박히게 됩니다. 과거를 되돌아보는 기억을 끄집어내는 과정에서 밀도 높은 이정표 부분에서는 그 과정이 느리게 느껴지겠지요. 반면 시간 축에 드문드문 새겨진 시간의 잔상들을 끄집어내는 과정은 빨라지지요. 세월이 빠르게 축약되어 느껴집니다. 이 역시 시간의 흐름을 왜곡하여 느끼게 되는 요인입니다.
그렇다면 시간을 더디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제가 설명한 이론이 맞다면 시간을 더디게 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것은 나의 기억을, 나의 열망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더욱더 아름다운 추억, 더욱더 시리고 아픈 기억 그리고 간절한 열망을 품어 보는 것입니다. 시간 축에 의미 있는 기억의 이정표를 다시금 밀도 있게 심는 것이지요. 청년 때보다 중년과 노년이 된 시기에 더 크고 뜨거운 열망을 품고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는 것입니다. 이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는 것보다 훨씬 더 확실하게 시간을 조절하고 지배하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시간은 물리적 흐름이 아니라 의식이 배열하는 경험의 밀도이기 때문입니다.
오래전에 인터넷에서 우연히 본 그림이 있습니다. 어린이는 얼른 어른이 되고 싶은지 시곗바늘에 매달려 시간을 빨리 가게 하려 하지만, 나이 든 사람은 어떻게든 시간을 늦추려는 듯 다른 바늘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담고 있었습니다.
좋은 비유지만 저는 그 그림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시간의 속도와 길이를 아쉬워하는 것은 인생무상이라는 속임수에 걸려드는 것입니다. 시간의 함정에서 벗어나 시간의 깊이를 만드는 지혜를 키워야 합니다. 유튜브 방송을 시작해 봐도 좋고, 새로운 악기에 도전해 보아도 좋습니다. 어릿광대처럼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는 배우의 길을 걸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입니다. 그
렇게 다시 젊은 날처럼 이정표를 많이 심는 것입니다. 어렵게 느껴진다고요? 이런 일들을 차근히 가르쳐 주는 커뮤니티나 공공기관이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게 그것을 할 의지가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인생이라는 축에 놀랍고 신기한 시간과 삶의 이정표를 많이 심는다면, 흘러가는 시간에 연연하지 않고 나만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 이 기고는 대한보건협회 <더행복한 건강생활>과 함께 제공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