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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건강불평등 더욱 확대시킨다..우리나라도 동일

보건사회연 '위험사회 건강불평등' 연구보고서에서 불형평성 확인
심각한 자연재난 피해, 소득하위층이 중상층보다 1.8배 경험 많아

한국헬스경제신문 임동혁 기자 | 美콜롬비아대학교의 지구환경학과 교수인 존 머터가 지은 '재난 불평등'(원제: The Disaster Profiteers)에는 지진을 포함한 각종 재난이 특정 인종과 계층을 구분하지 않고 발생하지만, 그 실제 피해는 소득, 인종, 연령 등에 따라 불평등하게 영향을 미친다. 특히, 재난 복구 과정에서는 일부 계층이 오히려 부를 확대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20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펴낸 '국민의 건강수준 제고를 위한 건강형평성 모니터링 및 사업개발 - 위험사회에서 건강불평등'을 보면, 우리나라도 이러한 재난이 특정 사회적 약자계층에 더 큰 신체적.물질적 피해를 입힌다는 게 고스란히 들어났다. 

 

대표적 사회 재난으로 분류되는 감염병, 특히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피해는 여성 근로자의 일자리를 더 많이 앗아갔고, 근로조건과 주거조건이 열악한 노동자, 노숙인, 쪽방 주민에 더 큰 타격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감염병과 쓰나미는 사회적 계층이 뭔지 모르고 다가오지만, 실제 미치는 영향은 불평등한 것이다. 

 

보사연은 이번 연구를 위해 우리나라 국민 만 19~74세 1천837명을 대상으로 작년 5월 4~12일까지  갈수록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재난/위험사회와 소득 및 연령 등 인구통계학적인 변수를 묶어서 인식조사를 실시했다.  

 

통상 재난(disasters)은 지진, 태풍, 쓰나미 같은 자연 재난(natural disasters)과, 폭발, 테러, 붕괴, 감염병 등 사회 재난(man-made disasters)으로 분류되는데, 이들 모두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영향을 주지만, 실제로 나타나는 각종 피해는 인구사회적 요인에 따라 달리, 불평등하게 나타난다는 게 설문조사의 골자다. 


예컨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에서 콜센터 등 거리두기가 불가능한 조건의 노동자와 요양시설 등 집단수용시설 거주자들은 높은 집단 감염 위험에 노출됐고, '아프면 쉬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불안정 노동자의 현실이 부각됐다. 지난 여름에 태풍 힌남노 등으로 인한 폭우 피해가 소득계층이 열악한 반지하 주택 거주자에게 집중된 것도 그렇다. 

 

전체 1천837명 중 620명과 939명이 각각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으로 인한 피해를 경험했다. 재난 피해 경험자 중 재난으로 삶에 심각한 영향을 받았다고 답한 사람의 비율은 주관적인 사회계층(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어느 정도로 판단하는지에 대한 인식)이 낮은 집단, 사회적 지지를 받지 못했거나 사회를 신뢰하지 않은 집단 등 사회적 약자에서 특히 높았다.

 

자연재난에서 심각한 피해를 입은 사람의 비율은 65~74세의 52.8%로 19~34세의 37.3%보다 80%가량 높았다. 중졸이하(71.3%)가 대졸이상(47.2%)보다, 주관적 계층 하층(58.0%)이 '중상층 및 상층'(32.3%)보다, 자신이 사회적 지지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59.8%)이 받는다는 사람(44.0%)보다 높았다.

 

이런 추세는 사회재난에서도 유사했다. 소득하층 계층인 사람의 65.7%가 심각한 재난 피해를 입어 중상층 및 상층(52.5%)보다 비율이 높았다. 사회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경우(63.2%)가 사회적 지지를 받는 경우(51.2%)보다 심각한 재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컸다.

 

특히, 복구과정에서 소득이 낮은 사회적 약자는 재난 피해로부터 회복도 더뎠다. 전체 자연 재난 피해 경험자의 10.7%가 회복되지 않았다고 응답했는데, 이런 비율은 중졸이하(21.8%), 하층(21.4%), 비정규직(13.9%), 사회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경우(14.7%), 사회를 신뢰하지 않은 집단(13.8%)에서 특히 높았다.

 

사회 재난 피해 경험자 중 회복되지 않았다고 한 응답자는 24.1%로, 중졸이하(38.2%), 하층(38.8%), 비정규직(28.4%) 집단에서 응답률이 높았다. 재난 상황에서 정부의 지원이 불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경제적 지원과 보건의료 지원에 대해 각각 70.0%와 40.3%였는데, 하층(83.2%·51.3%), 사회적 지지 받지 못함(82.9%·54.8%), 사회를 신뢰하지 않음(77.1%·47.7%)이라고 답변한 집단에서 특히 응답률이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는 국가의 적극적인 재난 대응의 아쉬움을 토했다. 전체 응답자(재난 경험자+재난 미경험자)의 64.9%는 재난 예방과 대비에서, 65.2%는 재난 발생 후 대응·복구에서 국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는데, 72.1%는 국가와 우리사회 전체의 재난 대응 능력이 부족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재난 복구에서 중요한 일로는 민생경제 회복이나 전 국민 재난지원금 같은 전 국민 대상 지원 정책보다는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꼽는 응답자가 훨씬 많았다. 신종 감염병 상황을 제시하고 재난 회복 단계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지원해야 할 정책을 고르도록 했는데, '생계가 어려워진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 지원'(48.5%), '건강 취약계층에 대한 의료서비스 지원'(47.8%)이라는 응답이 많은 반면 '침체된 지역의 민생경제 회복 지원'(30.4%), '전 국민 재난지원금 추가 지급'(24.4%), '매출 감소 피해에 대한 소상공인 회복지원'(19.9%)이라는 응답은 적었다.
 

보사연 연구팀은 "재난 대응 과정에서 '형평성 렌즈'를 채택하는 올바른 정책이 없다면 각종 위험 및 재난은 회복 기간 동안에 기존 불평등을 더욱 확대할 수 있다"며 "취약계층의 재난에 대한 취약성을 보완해주고 재난 발생 시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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